Ⅱ. 싯다르타의 탄생
1. 석가족
석가족(釋迦族)은 일부의 경전에서는 서기전 1~서기후 2세기 무렵 서북인도에 침입하여 인도에서 널리 사용된 사카력(曆)을 만들어낸 사카(Saka)족도 석가로 쓰는 예가 있으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숫타니파타〉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그들은 자신을 ‘태양의 후예’라고 자처한다. 따라서 사아캬(Sakiya) 또는 사캬(Sakya) 라고 불리는 석가족은 싯다르타의 외가 쪽 이기도한 코리아(拘利, Koliya)족과 함께태양의 후예(Adicca-bandhu)라고 불리는 포족(胞族: phratry)에 속하는 부족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부족이 순수한 아리아인(人)이라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네팔계(系) 민족에 속하는 종족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아리안 문화의 영향 하에 있었던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석가족 내부에 엄격한 카스트의 구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견해도 있다.
그 외에 사캬 족 자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밖에는 알 수가 없다. 또 후세 사람들이 사캬 족에 관해 기록한 것들은 그 진상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신빙성이 없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어느 정도의 추리력을 발휘하여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석가족이 거주하던 지역은 네팔과 인도의 국경 부근에 있는 한 지방인데, 현재의 지명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의 북방이다. 중인도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는 북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남으로는 갠지스 강으로 유입하는 많은 지류가 있어서 풍부한 물을 이용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으며, 일종의 공화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다만 남쪽의 대국인 코살라국에 인접한 탓으로 주권은 코살라국에 종속되었지만, 자치권은 인정되고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석가족은 태양의 후예임을 자처한다. 이와 같은 태양숭배에 있어서 태양은 지상세계와 지하세계의 통치자다. 태양은 우주의 모든 것에 빛과 생명을 부여하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정의의 강력한 수호자이며, 모든 것을 밝혀주고 알게 해주는 지혜의 원천이다. 이런 통치권·수혜능력·정의·지혜 등의 능력은 대부분의 우수한 종교적 집단에서 중심적인 것이며, 이런 맥락 안에서 고도로 발달된 태양에 관한 이데올로기가 발견된다. 왕들은 태양의 힘으로 통치했고 태양의 후손임을 주장했다. 태양을 인격화한 태양신들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을 가졌다. 태양은 종종 최고의 신과 동일시되거나 최고신의 중요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도유럽어족 사이에서 태양은 가장 인기 있는 신들 가운데 하나였고, 그들에게는 신성한 힘의 상징이었다. ‘수리아’는 선과 악의 행위를 모두 관찰할 수 있는 신으로 고대 인도의 베다 찬송에서 찬미되었다. 그는 어둠뿐만 아니라 악한 꿈과 질병도 쫓아냈다. 그리고 평화로 특징지어지는 태양 왕조와 전쟁을 좋아하는 달 왕조는 대립되는 면이 있다.
태양 영웅들 및 태양왕들은 인도 신화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야마의 아버지인 수리아의 다른 이름인 ‘비바스반트’는 이란신화에서 ‘이마’의 아버지인 ‘비바반트’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인도신화의 ‘야마’와 이란신화에서의 ‘이마’는 같은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셈족의 신화의 ‘아담’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나아가서 셈족신화의 ‘노아’와 인도신화의 ‘마누’는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대로 갈수록 어떠한 공유된 원형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이런 사항으로 결국 수리야는 유대신화에서는 아담의 창조자인 ‘야훼’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 태양신은 ‘헬리오스’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나아가서 우리 북부여 신화의 ‘해모수’가 이들과 너무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꼭 언급해 두고 싶다. ‘해모수’라는 이름 자체가 ‘해+모세(Moses)’를 연상시키고, 헬리오스와 사두마차보다 업그레이드된 오룡거를 타고 노니시는 분이 아닌가?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는 뒤이어 언급할 ‘인드라’는 너무도 닮은 점이 많다. 그리고 이를 연장하여 우리네의 ‘환인(桓因)’과 연결시키는 견해도 있으니, 그에 따른다면 결국 환인은 제우스가 된다.
석가족이라는 명칭에서도 나타나듯 또 그들과 뗄 수없는 신이 바로 이 ‘인드라’신 이다. 이른바 정식명칭은 석가제파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이다. 줄여서 석가제파(釋迦提婆)·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도 한다. 또한 천제석(天帝釋)·천주(天主)·인다라(因陀羅)라고도 한다. 대개 제석천으로 알려져 불리운다. 불교에서는 불법(佛法)과 이에 귀의하는 자를 수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하는 하늘의 임금이다.
제석천의 원형인 인드라(Indra)는 베다시대의 최고신으로서 전형적인 아리아인의 신으로서 호전적인 이 신은 자신의 적인 무수한 인간들과 악마들을 무찔렀고 태양을 항복시켰으며, 계절풍이 뚫고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용 브리트라를 죽였다. 그의 무기는 천둥과 번개이며, 그는 제사 때 바치는 영약 소마 즙을 마시고 강해져서 이러한 위업을 이루었다.
그와 동맹한 신들로는 구름을 타고 폭풍을 몰고 다니는 루드라(또는 마루트), 쌍둥이 신으로 말을 잘 모는 아슈빈, 후에 힌두교의 주요 3신의 하나가 된 비슈누 등이 있다. 후기의 힌두교에서는 인드라는 비의 신이며 하늘의 섭정, 동방의 보호자라는 역할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고대 전설 모음집인 〈푸라나 Puranas〉에는 크리슈나와 인드라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크리슈나가 브라자(지금의 우타르프라데시에 있음)에서 소치는 사람들에게 인드라를 숭배하지 말라고 설득하자 화가 난 인드라가 비를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손가락 끝으로 고바르다나 산을 들어 올려 사람들에게 그 아래로 비를 피하게 했고, 이렇게 7일이 지나자 결국 인드라는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크리슈나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인드라는 〈마하바라타 Mahbhrata〉에 나오는 전쟁의 영웅 아르주나의 아버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몸 전체에 1,000개의 눈과 비슷한 표식(실제로는 요니, 즉 女陰像)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가끔 '1,000개의 눈을 가진 자'라고도 불린다. 이 표식은 그가 어느 현인의 아내를 유혹했기 때문에 그의 저주를 받아 생긴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에서 그는 흔히 아이라바타라고 하는 흰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묘사된다. 인드라는 인도의 불교와 자이나교의 신화에도 나온다. 신들의 우두머리인 그는 자이나교의 성자 마하비라가 세상과 결별하는 의미에서 머리를 깎았을 때 그것을 두 손에 받아들었다.
불교에서는 이후 제석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러 경론(經論)에 따르면 제석천은 원래 마가다국(Magadha)의 브라만이었으며, 보시(布施) 등의 공덕을 닦음으로써 도리천(利天)에 태어나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천주가 되었다. 불교에서 그의 지위는 범천(梵天)과 같이 불교의 호법주신(護法主神)으로서 동방(東方)을 수호한다.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의 도리천 선견성(善見城)에 거주하며 사천왕(四天王)과 십대천자(十大天子)가 양 옆에서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가 성불한 이후 제석천은 그의 수호신이 되었으며, 석가모니가 도리천에 올라가 어머니에게 설법할 때에는 보개(寶蓋)를 손수 들고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 모습은 보통 천인(天人)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하얀 코끼리를 타고 오른손에는 삼고저(三杵)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 인드라 신이 우리나라 〈단군신화〉의 천제(天帝) 환인(桓因)이라는 견해가 있음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 환인이라는 이름이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는 불교의 용어에서 차용하여 표기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이 같은 견해를 따를 수 없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一然)도 환인은 제석(帝釋)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를 달았다는 것을 주요근거로 설명하나, 삼국유사 원문에는 범어에서 유래되어 제석이라는 설명의 주를 단 것이 아니라 그냥 제석을 뜻한다고만 되어있다. 더군다나 ‘桓因’이 아니고 ‘桓國’으로 되어있다.
차라리 반대로, 불교에서 다음의 견해와 같이 제석을 원래 우리에서 비롯된 ‘환인’을 빌어서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제석신(帝釋神)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민간신앙 가신(家神)의 하나로 되어있다. 불교로 인해 제석천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환인(桓因), 즉 재래의 하늘님 신앙과 만나 토속화된 것이다. 불가에서 이 제석천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제석도량(帝釋道場) 등에서 본래 신중(神衆)으로서 신앙되기도 했다. 또 사찰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승려들이 재미(齋米)를 들고 미고(米庫)에 가서 석제환인위(釋提桓因位)라는 위패 앞에 삼배(三拜)를 한다는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의 기록이 있다. 이는 환인이라는 재래의 천신(天神)이 농경문화 속에서 농경신(農耕神)화되었고, 이것이 다시 불교의 유입 이후 불교 제석신이라는 명칭으로 전화된 과정을 보여준다. 제석은 민간신앙 안에서 가신의 하나로서 산신(産神)인 삼신(三神)과 혼융적(混融的)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때로는 삼불제석(三佛帝釋)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삼신과 삼불제석의 기원을 밝히는 무가(巫歌)의 하나인 〈제석본풀이〉에서 잘 드러난다. 제석은 이처럼 민간신앙에서 농작물의 결실 및 수복(壽福)과 연관된 복합적 기능의 신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가신으로서의 제석은 안택(安宅)이나 굿에서 모셔지는데, 신체(神體)는 제석단지·시준단지라고 불리며, 흰 항아리에 쌀을 담아 다락이나 부엌에 안치한다. 무녀가 제석굿을 진행할 때는 흰 장삼과 고깔을 쓰고 염주를 걸며, 흰 부채를 들고 중타령 등의 무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제물(祭物)로는 고기류를 일체 쓰지 않고 곡물로 만든 백설기를 바친다.
따라서, 불교가 들어와서 제석천을 표기할 때 오히려 환인을 빌어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 제석천과 부처님의 관계를 가지고 와서 환인과 부처님과의 관계로 만듦으로서 우리 고유 신앙에 불교가 어떻게 스며들고 변색되어 갔는가 하는 것도 엿볼 수 있다.
인드라 신은 원래 서방(西方)으로부터 인도로 침입하여 원주민과 싸워 이들을 정복한 아리아인(人)의 보호신이었다(그리하여 제우스와 그리 닮은 것이다). 따라서 인드라 속에는 고대 아리안 전사(戰士)의 이상상(理想像)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후기 힌두교 신화에서는 그런 흔적이 점점 희미해지나 제신(諸神)의 우두머리로서 천계(天界)에 군림하고, 많은 악인(樂人)과 미녀에 둘러싸여 전장(戰場)에서 명예로운 전사(戰死)를 한 용사의 내방을 환영하는 무용신(武勇神)의 성격을 끝까지 간직하였다.
이 신의 유서(由緖)는 다른 신들보다 오래되어 소(小)아시아·메소포타미아·이란에도 알려져 있다. 《리그베다》에서도 가장 많은 찬가가 그에게 바쳐지고 있으며(전체의 약 1/4), 원래 뇌정신(雷霆神)의 성격에서 점차 의인화하였다. 다갈색의 거대한 체구로 우주를 제압하고 폭풍의 신 마르트를 거느리고 있으며, 신주(神酒) 소마로 슬기를 기르는가 하면 애용하는 무기 바주라[金剛杵]로 악마를 쳐부순다.
이와 같이 제석천 인드라는 석가족이 깊이 숭상하던 신이었을 것이며 후대에 불교승단에서도 호법(護法)의 선신(善神)으로 여겨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신으로 계속적으로 중요하게 숭상받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불교에 있어서 제석천과 함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신이 바로 범천왕(梵天王)이다. 범천(Brahm )은 인도 후기 베다 시대의 힌두교 주요 신의 하나이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서 중성(中性)인 브라만과 달리 남성으로 표현되는 브라마는 베다의 창조신 프라자파티와 연관되어 있고, 뒤에는 프라자파티와 동일시되었다. 원래 브라만은 제관(祭官)이 외는 기도문·주문(呪文) 또는 그 신비한 주력(呪力)·영력(靈力)까지를 의미했는데, 더 나아가 만물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영력·영체(靈體)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브라만이 우주창조신이라는 인격신적 성격과 합치될 때 브라마, 즉 범천이 된다. 이 신은 그리 오래전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며, 브라마나·고(古)《우파니샤드》,《수트라》등의 문헌에 나타나 있다. 여러 서사시에도 자주 나오며 불전(佛典)에서는 ‘사바주범천(娑婆主梵天)’으로서 불타에게 설법을 권장하기도 하고, 불법(佛法)을 기리며 지키는 신으로도 나온다.
브라마는 황금알에서 태어나 땅과 그 위의 모든 것을 차례로 창조했다고 한다. 후대의 종파적 신화들에서는 그가 비슈누의 배꼽에서 피어난 연꽃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종파적 신앙이 대두됨에 따라 브라마는 점차 비슈누와 시바에게 가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전 시대의 다양한 종파의 전통을 통합하려 했던 시도는 비슈누·시바·브라마를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신의 세 형태로 생각한 삼신일체 사상도 나타난다. 7세기에 정통 힌두교를 내세우는 스마르타교가 브라마를 빼고 다른 다섯 신을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는 권능을 상실했다. 오늘날 브라마만을 숭배하는 교단이나 종파는 없고, 그에게 봉헌된 사원도 거의 없다. 유일한 사원이 아즈메르(라자스탄 주) 근처 푸슈카르에 있다. 하지만 시바와 비슈누를 모시는 사원에서는 반드시 브라마 신상을 모시고 있다. 브라마는 예술 작품에서 흔히 4베다(인도 최초의 성전), 4유가(세계의 1순환기를 4단계로 구분한 것 중의 한 시대)와 4바르나(사회계급)를 상징하는 4개의 얼굴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4개의 팔에 제의도구, 염주, 책을 든 채 연화좌나 그의 탈 것인 백조(ha sa) 위에 앉거나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부인들인 사비트리와 사라스바티가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 회화에서는 누런 피부색에 흰 옷과 화환을 걸친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주 우리에게는 친근감이가고 낯익은 우리와 닮은 모습이다.
그의 성(姓)인 고타마는 '가장 탁월한 수소'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 시대의 부족사회에 있었던 동물숭배, 특히 인도에서의 뿌리 깊은 소에 대한 숭배 관념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황소숭배(bull cult)는 사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종교의식으로 현대 사가들은 에게 해(海) 동부에서 시작되었으며, 파키스탄의 인더스 계곡에서 동부 유럽의 도나우 강까지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황소 신의 상징은 남근상이었고, 동쪽에서 황소는 종종 위대한 풍요의 여신의 배우자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생산의 남성적 원리와 정복할 수 없는 힘을 나타냈다. 많은 황소 조각이나 그림들이 발견되었는데, 부적이나 액막이로 사용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이것들은 부족의 성소(聖所)에 있는 커다란 상(像)의 복제품이었을 것이다. 황소 숭배는 역사시대에도 계속되었으며, 특히 인더스 계곡과 크레타 섬에서 중요하게 행해졌다.
인더스 계곡에서의 황소는 곧 시바신의 탈 것 내지는 화신으로 여겨졌으며 크레타 섬에서의 황소숭배는 황소자리의 전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제우스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황소는 시바신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할 것은 비슈누신과 시바신의 관계이다. 간단하게 말해 비슈누는 보존과 유지의 신이고 시바신은 재창조를 위한 파괴를 상징하는 신이다. 외모 또한 서로 대비되는 특징을 보여주는데, 비슈누의 피부는 흑인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색이고 ‘슈리바트샤’라는 불멸성을 상징하는 곱슬거리는 털이 특징이다. 시바는 흰색이나 잿빛의 피부로 나타나고 보통 타래머리(ja maku a)를 하고 있다. 내 눈에는 마치 비슈누는 드라비다족을, 시바는 아리아족의 인종적 특징을 각각 묘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그 각기 맡은 임무 또한 드라비다족을 침략한 아리아족의 역사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후대 인도의 역사에서 기득권 세력은 비슈누를 숭배하고 그 외 중심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은 시바를 숭배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계층이 섬기는 신의 모습이 각각 대립관계에 있는 계층의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지니고 있는 점이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마치 상대 계층을 서로 신으로 모시면서 화합을 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덧붙이면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브라마(梵天)는 회화 등에서 황인종임을 시사하는 누런 피부색을 나타내는 점 또한 눈에 띈다. 16세기 초 인도를 지배했던 무굴왕조의 역사 훨씬 이전 고대에 이른바 『환단고기 桓檀古記』 등의 전승들이 비추는 바와 같은 잊혀진 역사가 있어 그런 식으로 투영되어 나온 건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카필라성에 살고 있던 석가족의 주신은 단연 제석천인 ‘인드라’였을 것이며, 태양신 ‘수리야’와 함께 범천, 그리고 ‘시바’ 등 이였을 것이다. 이렇듯 베다문화의 영향아래 있었던 석가족의 연원이 아리아족의 계통이며 북방의 이란 나아가서 스키타이족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비쳐내 준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사상적 배경에는 태양숭배의 바탕 위에 아리안의 신인 인드라, 그리고 베다시대를 통해 형성된 시바와 범천에 대한 신앙이 층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제신(諸神)을 주로 섬기는 석가족의 브라만 집안인 고타마 씨족이 싯다르타의 집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 등은 고대 우리나라에서 소도(蘇塗)의 주재자(主宰者)이기도 했던 지금에 와서는 무당과 같은 제사장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던 제정일치의 시대상과 비교하면 이해가 수월할 것이다. 나아가서 카필라 성이 그러한 소도가 있던 곳인지도 혹시나 모를 일이다. 소도는 곧 그리스·로마의 아실리(Asillie) 또는 아실럼(Asylum)이라는 점에서 말해보는 것이다. 초기 불교 정사인 기원정사(祇園精舍)의 다른 이름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정확히 그 의미는 아실럼이 된다는 것도 덧붙여 둔다.
석가족의 우두머리였던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이 싯다르타의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마야(Maya)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족 집단의 우두머리는 라자(raja:왕)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이는 병권을 쥔 통치자로서 군림하는 군주의 칭호가 아니라 단순히 행정상의 수장(首長)이라는 직권을 의미하고 있었다.
정반왕은 백정왕(白淨王)·진정왕(眞淨王)이라고도 하며, 음역하여 수도타나(首圖馱那)·수두단나(輸頭檀那)·열두단(閱頭檀: 또는 悅頭檀)이라고도 한다. 그는 사자협왕(獅子頰王: Simha-hanu)의 장자로 태어났으며 죽은 시기에 대해서는 76세라는 설과 97세라는 설이 있다. 〈정반왕반열반경 淨飯王般涅槃經〉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정반왕이 임종할 때 카필라바스투로 돌아와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한다.
‘정반(淨飯)’이라는 이름이 신에게 바치는 정결한 음식을 뜻한다고 볼 때 정반왕 가문의 계급은 대개 알려진 바인 크샤트리아가 아닌 브라만이라고 생각한다. 브라만 계급의 높은 지위는 그 연원이 후기 베다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인도 북부에 정착한 인도유럽어 사용 주민들은 사제계급인 브라만, 전사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농민층인 수드라(Sudra)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이들 4계급의 상대적인 지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브라만에 대한 뿌리 깊은 존경은 이들이 본래부터 다른 계급의 사람들보다 종교적인 순수성이 높으며 이들만이 중요한 몇몇 종교의식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힌두교 성전에 대한 연구와 암송은 전통적으로 브라만의 임무로 되어 있었으며 수세기 동안 인도의 모든 학문 활동도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브라만들은 많은 특권과 높은 교육수준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정치권력은 전사계급에 주어져 있었지만 브라만들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하고 지배계급의 사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브라만 계급의 종교적인 순수성은 수많은 금기사항을 지킴으로써 유지된다. 그 가운데에는 엄격한 음식물 선택, 낮은 계급 사람들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것 등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브라만들이 채식주의자들이다. 이와 같이 이런 브라만의 특징은 특히 ‘정반’이라는 이름에서 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싯다르타가 어려서부터 받았다는 베다의 암송교육과 함께 코살라국에 대한 종속국(從屬國)에 불과한 카필라바스투의 지위 또한 그곳이 다만 브라만이 통치했던 지역일 가능성 시사한다. ‘사문유관’의 전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궁전에서 갇혀 지냈다는 정황도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접촉하기를 꺼려하는 브라만의 습관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정반왕을 크샤트리아의 권능을 수행하기도한 브라만 계급의 사람이라고 본다. 특히 현대에 있어서도 브라만 계급의 요리사는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 또한 ‘정반’이라는 이름이 브라만임을 나타낸다고 보게 한다.
마야부인에 관해서는 구리(拘利, Koliya) 성주인 아누샤카(annu-sakya) 왕의 딸이라는 언급 외에는 싯다르타의 탄생 설화에 잘 알려진 신화적인 언급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이름인 마야(maya)란 힌두 철학의 근본 개념으로 산스크리트어로 ‘마술’ 또는 ‘환상’이라는 개념이다. 특히 정통 베단타 경전에 기초한 불이일원론(Advaita) 학파에서 자주 쓰는 개념이다.
마야는 원래 마술의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환상을 믿게 하는 신의 힘을 가리킨다. 그 후 마야는 현상세계가 진짜라는 우주적인 환상을 생성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불이일원론 학파에서 마야는 ‘무한한 브라만(최고의 존재)이 유한한 현상세계의 모습을 띠게 하는 우주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경험적 자아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은 브라만과 동일한 자아의 참다운 성격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 의해 마야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초래된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의 어머님의 이름으로는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따라서 ‘마야’라는 싯다르타의 어머니의 이름 또한 후대에 신화에서 부여된 이름일 수도 있을 가능성을 살짝 내비친다.
이모이자 양어머니인 마하프라자파티(Maha-praj pati)의 이름 또한 흥미로운데, 프라자 파티는 산스크리트어로 ‘모든 피조물의 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양육자로서의 격에 어울릴만한 이름이다. 그리고 알려진바 대로, 그녀는 최초의 비구니이다.
이렇게 싯다르타의 부모의 이름만 살펴보아도 예사로움 없이, 우리에게 숨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