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시타 선인의 예언
석가모니의 탄생에 관한 또 하나의 유명한 전설은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의 예언이다. 신생아가 태어난 날의 별자리에 따라 길흉을 점치는 것은 당시의 풍습이었으므로 정반왕도 이 방면의 대가들을 불렀다. 아시타는 이 아이는 위대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든가 아니면 부처(覺者)가 되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자신은 이미 늙었으므로 성장한 후의 그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의 예언은 정반왕과 싯다르타의 일생전반(一生全般)을 지배하는 막강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최고(最古)의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도 이 부분은 잘 묘사되어 있는데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682. 신들은 미친 듯이 노래하며 춤추고 있구나. 수미산 정상에 사는 신들이여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 주소서.
683. 신들은 말했다: 이 세상에 축복을 주기 위해 보디사트바(Bodhisattva)가 지금 태어났다. 석가족의 마을, 룸비니 촌락에. 이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684. 살아 있는 존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 인간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인간인 그(부처)는 머지않아 구도자들이 모이는 숲속(사르나트, 녹야원)에서 진리의 바퀴를 굴리게 될 것이다. 뭇 짐승을 제압한 사자가 우렁찬 목소리를 토해내듯이.
685. 신들의 이 말을 들은 예언자 아시타는 급히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숫도다나(정반왕)의 궁전으로 가서 석가족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방금 태어난 왕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왕자를 한번 보고 싶구나.”
686. 석가족의 사람들은 방금 태어난 그 아이를 예언자 아시타에게 보였다. 금세공이 교묘하게 빚어낸 보석과도 같이 빛과 영광에 찬 저 모습을.
687. 불꽃처럼, 허공을 가는 달처럼, 그리고 구름을 헤치고 나온 가을 해처럼 그렇게 빛나는 저 왕자를 보면서 예언자는 기쁨으로 가슴이 마구 뛰었다.
688. 그때 신들은 아름답고 큰 일산으로 공중을 가리고 황금의 자루가 달린 야크의 꼬리(拂子, Cyajana)로 왕자의 몸을 아래위로 부채질했다. 그러나 일산과 야크의 꼬리를 든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689. 예언자는 노란 담요 속에서 황금의 금화와도 같이 빛나는 얼굴을 보고는 흰 일산으로 아기의 얼굴을 가려 줬다. 그리고는 아기를 받아 안고서 지극한 행복에 젖었다.
690. 관상과 운명학에 통달했던 그는 석가족의 황소와 같이 늠름한 아이를 안고서 아기의 얼굴에 나타난 운명을 읽어내고는 이렇게 외쳤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이 태어났다.”
691. 그리고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는 우울해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예언자가 우는 것을 보고는 석가족의 사람들은 물었다. “무슨 일인가. 무슨 불길한 징조라도 있단 말인가.”
692. 석가족의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예언자가 말했다. “이 왕자에게는 전혀 불길한 상이 없습니다. 또 그의 앞길에는 아무런 장애도 없을 것입니다. 이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 모두들 명심해서 듣기 바랍니다.
693. 이분은 이제 깨달음의 정상에 이르러 진리의 바퀴를 굴리게 될 것입니다. 이분은 순수의 절정(니르바나)을 체험한 다음 모든 인간의 행복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감화력은 넓고 깊게 퍼져 갈 것입니다.
694. 그런데 나는 이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이분이 깨달음을 얻는 그 중간에 나는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분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지금 나는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695. 예언자는 석가족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을 일으킨 다음 자신의 구도자적인 삶을 위하여 왕궁을 떠나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조카 날리까를 불러서 훗날 가르침을 따르라고 당부했다.
〈수행본기경〉에는 여래의 32상(相)을 열거하는 관상쟁이로 묘사되고 있다. 다른 여러 경전에서도 아시타의 언급은 꼭 있는데, 석가모니의 탄생 전설은 석가족의 풍속이나 의례를 고대인도 당시의 표현형식으로 전하고 있는 점이 많고, 다른 여러 경전 역시 마찬가지로 고유한 표현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그 하나하나를 해명함으로써 성립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실제 있었던 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시타 선인이 존경스러운 점이 있다. 단순한 관상쟁이라면 자기가 배운 관상 실력대로 앞뒤 안 가리고 떠들고만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후를 살필 줄 아는 실제로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시타 선인의 입장이 되어보라. 지금 자신의 종족의 왕이 십년간이나 기다린 끝에 드디어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들을 낳고 왕비가 갑자기 사망하였다. 아시타 선인이 태어나자 방문한 것으로 〈숫타니파타〉등의 경전 등에서는 되어 있으나 믿기 힘들고, 아마도 조금은 지나서였을 것이다. 따라서 태자를 얻은 기쁨 보다는 왕비가 돌아간 비통이 더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말을 했어야 했을까? 당시에 자신의 예언이 어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당연히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어머니를 죽게 하며 태어난 싯다르타가 앞으로 출가 도피하여 결국은 나라를 망해먹을 (실제로 부처님의 성도 이후에는 코살라국에 의해 석가족은 멸망하였다.) 것이라고 실제 미래를 보는 신통이란 것이 있어 사실대로 말해버렸다면 과연 싯다르타가 석가모니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아시타 선인으로서는 당시에 해줄 수 있는 꼭 필요한 최고의 말을 해주고 떠난 셈이다.
轉輪聖王 chakravartin (산)cakra-vartirajan. cakravartin이라고도 씀.
답글삭제고대 인도에서 유래한 세계의 통치자를 지칭하는 개념.
산스크리트 chakra(輪)와 vartin(轉)이 합성되어 파생된 말로서 '자신의 전차바퀴를 어디로나 굴릴 수 있는' 곧 '어디로 가거나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통치자를 뜻한다. 전 세계를 통치한다는 전륜성왕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서기전 3세기 마우리아 왕조 시대에 아소카 왕의 업적을 칭송하는 경전 및 기념비에 나타난다. 이 세기의 불교와 자이나교의 사상가들은 보편적 군주관에 정의와 도덕의 수호자라는 측면을 부각시켰다. 전륜성왕은 속세에서 석가모니와 같은 존엄을 지닌 존재로서 32상(相)등 석가모니와 공통되는 다수의 특성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비바사론 大毘婆沙論〉 등의 문헌에서는 전륜성왕에 4종을 구별하여, 금륜왕은 수미4주(須彌四洲) 곧 전 세계를 통치하며, 은륜왕은 3주를, 동륜왕은 2주를, 철륜왕은 남염부주(南閻部洲) 1주를 통치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왕경 仁王經〉 및 〈보살영락본업경 菩薩瓔珞本業經〉 등에서는 이러한 설을 더욱 발전시켜 4종의 전륜성왕을 보살의 수행 단계에 배당했으니, 곧 철륜왕은 십신위(十信位), 동륜왕은 십주위(十住位), 금륜왕은 십회향위(十廻向位)에 배당했다. 이러한 전륜성왕의 개념은 왕권 강화 및 호국불교사상의 고취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석지현, 『숫타니파타 (서울: 민족사, 1993)』, 175~177쪽. 〈숫타니파타〉의 세 번째 장인 마하박가(大品: 큰장)에서 날라까가 석가모니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부분의 서시(序詩)로서 언급된 〈숫타니파타〉에서는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전기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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