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Ⅱ. 싯다르타의 탄생 1. 석가족


. 싯다르타의 탄생
 
1. 석가족
석가족(釋迦族)은 일부의 경전에서는 서기전 1~서기후 2세기 무렵 서북인도에 침입하여 인도에서 널리 사용된 사카력()을 만들어낸 사카(Saka)족도 석가로 쓰는 예가 있으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숫타니파타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그들은 자신을 태양의 후예라고 자처한다. 따라서 사아캬(Sakiya) 또는 사캬(Sakya) 라고 불리는 석가족은 싯다르타의 외가 쪽 이기도한 코리아(拘利, Koliya)족과 함께󰡐태양의 후예(Adicca-bandhu)󰡑라고 불리는 포족(胞族: phratry)에 속하는 부족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부족이 순수한 아리아인()이라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네팔계() 민족에 속하는 종족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아리안 문화의 영향 하에 있었던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석가족 내부에 엄격한 카스트의 구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견해도 있다.

 그 외에 사캬 족 자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밖에는 알 수가 없다. 또 후세 사람들이 사캬 족에 관해 기록한 것들은 그 진상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신빙성이 없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어느 정도의 추리력을 발휘하여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석가족이 거주하던 지역은 네팔과 인도의 국경 부근에 있는 한 지방인데, 현재의 지명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의 북방이다. 중인도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는 북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남으로는 갠지스 강으로 유입하는 많은 지류가 있어서 풍부한 물을 이용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으며, 일종의 공화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다만 남쪽의 대국인 코살라국에 인접한 탓으로 주권은 코살라국에 종속되었지만, 자치권은 인정되고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석가족은 태양의 후예임을 자처한다. 이와 같은 태양숭배에 있어서 태양은 지상세계와 지하세계의 통치자다. 태양은 우주의 모든 것에 빛과 생명을 부여하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정의의 강력한 수호자이며, 모든 것을 밝혀주고 알게 해주는 지혜의 원천이다. 이런 통치권·수혜능력·정의·지혜 등의 능력은 대부분의 우수한 종교적 집단에서 중심적인 것이며, 이런 맥락 안에서 고도로 발달된 태양에 관한 이데올로기가 발견된다. 왕들은 태양의 힘으로 통치했고 태양의 후손임을 주장했다. 태양을 인격화한 태양신들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을 가졌다. 태양은 종종 최고의 신과 동일시되거나 최고신의 중요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도유럽어족 사이에서 태양은 가장 인기 있는 신들 가운데 하나였고, 그들에게는 신성한 힘의 상징이었다. ‘수리아는 선과 악의 행위를 모두 관찰할 수 있는 신으로 고대 인도의 베다 찬송에서 찬미되었다. 그는 어둠뿐만 아니라 악한 꿈과 질병도 쫓아냈다. 그리고 평화로 특징지어지는 태양 왕조와 전쟁을 좋아하는 달 왕조는 대립되는 면이 있다.

 태양 영웅들 및 태양왕들은 인도 신화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야마의 아버지인 수리아의 다른 이름인 비바스반트는 이란신화에서 이마의 아버지인 비바반트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인도신화의 야마와 이란신화에서의 이마는 같은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셈족의 신화의 아담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나아가서 셈족신화의 노아와 인도신화의 마누는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대로 갈수록 어떠한 공유된 원형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이런 사항으로 결국 수리야는 유대신화에서는 아담의 창조자인 야훼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 태양신은 헬리오스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나아가서 우리 북부여 신화의 해모수가 이들과 너무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을 꼭 언급해 두고 싶다. ‘해모수라는 이름 자체가 +모세(Moses)’를 연상시키고, 헬리오스와 사두마차보다 업그레이드된 오룡거를 타고 노니시는 분이 아닌가?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는 뒤이어 언급할 인드라는 너무도 닮은 점이 많다. 그리고 이를 연장하여 우리네의 환인(桓因)’과 연결시키는 견해도 있으니, 그에 따른다면 결국 환인은 제우스가 된다.

 석가족이라는 명칭에서도 나타나듯 또 그들과 뗄 수없는 신이 바로 이 인드라신 이다. 이른바 정식명칭은 석가제파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이다. 줄여서 석가제파(釋迦提婆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도 한다. 또한 천제석(天帝釋천주(天主인다라(因陀羅)라고도 한다. 대개 제석천으로 알려져 불리운다. 불교에서는 불법(佛法)과 이에 귀의하는 자를 수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하는 하늘의 임금이다.

 제석천의 원형인 인드라(Indra)는 베다시대의 최고신으로서 전형적인 아리아인의 신으로서 호전적인 이 신은 자신의 적인 무수한 인간들과 악마들을 무찔렀고 태양을 항복시켰으며, 계절풍이 뚫고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용 브리트라를 죽였다. 그의 무기는 천둥과 번개이며, 그는 제사 때 바치는 영약 소마 즙을 마시고 강해져서 이러한 위업을 이루었다.
그와 동맹한 신들로는 구름을 타고 폭풍을 몰고 다니는 루드라(또는 마루트), 쌍둥이 신으로 말을 잘 모는 아슈빈, 후에 힌두교의 주요 3신의 하나가 된 비슈누 등이 있다. 후기의 힌두교에서는 인드라는 비의 신이며 하늘의 섭정, 동방의 보호자라는 역할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고대 전설 모음집인 푸라나 Puranas에는 크리슈나와 인드라가 서로 대립관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크리슈나가 브라자(지금의 우타르프라데시에 있음)에서 소치는 사람들에게 인드라를 숭배하지 말라고 설득하자 화가 난 인드라가 비를 억수같이 퍼부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손가락 끝으로 고바르다나 산을 들어 올려 사람들에게 그 아래로 비를 피하게 했고, 이렇게 7일이 지나자 결국 인드라는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크리슈나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인드라는 마하바라타 Mahbhrata에 나오는 전쟁의 영웅 아르주나의 아버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몸 전체에 1,000개의 눈과 비슷한 표식(실제로는 요니, 女陰像)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가끔 '1,000개의 눈을 가진 자'라고도 불린다. 이 표식은 그가 어느 현인의 아내를 유혹했기 때문에 그의 저주를 받아 생긴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에서 그는 흔히 아이라바타라고 하는 흰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묘사된다. 인드라는 인도의 불교와 자이나교의 신화에도 나온다. 신들의 우두머리인 그는 자이나교의 성자 마하비라가 세상과 결별하는 의미에서 머리를 깎았을 때 그것을 두 손에 받아들었다.

 불교에서는 이후 제석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러 경론(經論)에 따르면 제석천은 원래 마가다국(Magadha)의 브라만이었으며, 보시(布施) 등의 공덕을 닦음으로써 도리천(利天)에 태어나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천주가 되었다. 불교에서 그의 지위는 범천(梵天)과 같이 불교의 호법주신(護法主神)으로서 동방(東方)을 수호한다.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의 도리천 선견성(善見城)에 거주하며 사천왕(四天王)과 십대천자(十大天子)가 양 옆에서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가 성불한 이후 제석천은 그의 수호신이 되었으며, 석가모니가 도리천에 올라가 어머니에게 설법할 때에는 보개(寶蓋)를 손수 들고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 모습은 보통 천인(天人)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하얀 코끼리를 타고 오른손에는 삼고저(三杵)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이 인드라 신이 우리나라 단군신화의 천제(天帝) 환인(桓因)이라는 견해가 있음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 환인이라는 이름이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는 불교의 용어에서 차용하여 표기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이 같은 견해를 따를 수 없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一然)도 환인은 제석(帝釋)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를 달았다는 것을 주요근거로 설명하나, 삼국유사 원문에는 범어에서 유래되어 제석이라는 설명의 주를 단 것이 아니라 그냥 제석을 뜻한다고만 되어있다. 더군다나 桓因이 아니고 桓國으로 되어있다.

 차라리 반대로, 불교에서 다음의 견해와 같이 제석을 원래 우리에서 비롯된 환인을 빌어서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제석신(帝釋神)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민간신앙 가신(家神)의 하나로 되어있다. 불교로 인해 제석천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환인(桓因), 즉 재래의 하늘님 신앙과 만나 토속화된 것이다. 불가에서 이 제석천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제석도량(帝釋道場) 등에서 본래 신중(神衆)으로서 신앙되기도 했다. 또 사찰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승려들이 재미(齋米)를 들고 미고(米庫)에 가서 석제환인위(釋提桓因位)라는 위패 앞에 삼배(三拜)를 한다는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의 기록이 있다. 이는 환인이라는 재래의 천신(天神)이 농경문화 속에서 농경신(農耕神)화되었고, 이것이 다시 불교의 유입 이후 불교 제석신이라는 명칭으로 전화된 과정을 보여준다. 제석은 민간신앙 안에서 가신의 하나로서 산신(産神)인 삼신(三神)과 혼융적(混融的)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때로는 삼불제석(三佛帝釋)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삼신과 삼불제석의 기원을 밝히는 무가(巫歌)의 하나인 제석본풀이에서 잘 드러난다. 제석은 이처럼 민간신앙에서 농작물의 결실 및 수복(壽福)과 연관된 복합적 기능의 신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가신으로서의 제석은 안택(安宅)이나 굿에서 모셔지는데, 신체(神體)는 제석단지·시준단지라고 불리며, 흰 항아리에 쌀을 담아 다락이나 부엌에 안치한다. 무녀가 제석굿을 진행할 때는 흰 장삼과 고깔을 쓰고 염주를 걸며, 흰 부채를 들고 중타령 등의 무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제물(祭物)로는 고기류를 일체 쓰지 않고 곡물로 만든 백설기를 바친다.

 따라서, 불교가 들어와서 제석천을 표기할 때 오히려 환인을 빌어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 제석천과 부처님의 관계를 가지고 와서 환인과 부처님과의 관계로 만듦으로서 우리 고유 신앙에 불교가 어떻게 스며들고 변색되어 갔는가 하는 것도 엿볼 수 있다.

 인드라 신은 원래 서방(西方)으로부터 인도로 침입하여 원주민과 싸워 이들을 정복한 아리아인()의 보호신이었다(그리하여 제우스와 그리 닮은 것이다). 따라서 인드라 속에는 고대 아리안 전사(戰士)의 이상상(理想像)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후기 힌두교 신화에서는 그런 흔적이 점점 희미해지나 제신(諸神)의 우두머리로서 천계(天界)에 군림하고, 많은 악인(樂人)과 미녀에 둘러싸여 전장(戰場)에서 명예로운 전사(戰死)를 한 용사의 내방을 환영하는 무용신(武勇神)의 성격을 끝까지 간직하였다.

 이 신의 유서(由緖)는 다른 신들보다 오래되어 소()아시아·메소포타미아·이란에도 알려져 있다. 리그베다에서도 가장 많은 찬가가 그에게 바쳐지고 있으며(전체의 약 1/4), 원래 뇌정신(雷霆神)의 성격에서 점차 의인화하였다. 다갈색의 거대한 체구로 우주를 제압하고 폭풍의 신 마르트를 거느리고 있으며, 신주(神酒) 소마로 슬기를 기르는가 하면 애용하는 무기 바주라[金剛杵]로 악마를 쳐부순다.

 이와 같이 제석천 인드라는 석가족이 깊이 숭상하던 신이었을 것이며 후대에 불교승단에서도 호법(護法)의 선신(善神)으로 여겨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신으로 계속적으로 중요하게 숭상받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불교에 있어서 제석천과 함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신이 바로 범천왕(梵天王)이다. 범천(Brahm )인도 후기 베다 시대의 힌두교 주요 신의 하나이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서 중성(中性)인 브라만과 달리 남성으로 표현되는 브라마는 베다의 창조신 프라자파티와 연관되어 있고, 뒤에는 프라자파티와 동일시되었다. 원래 브라만은 제관(祭官)이 외는 기도문·주문(呪文) 또는 그 신비한 주력(呪力영력(靈力)까지를 의미했는데, 더 나아가 만물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영력·영체(靈體)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브라만이 우주창조신이라는 인격신적 성격과 합치될 때 브라마, 즉 범천이 된다. 이 신은 그리 오래전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며, 브라마나·()우파니샤드,수트라등의 문헌에 나타나 있다. 여러 서사시에도 자주 나오며 불전(佛典)에서는 사바주범천(娑婆主梵天)’으로서 불타에게 설법을 권장하기도 하고, 불법(佛法)을 기리며 지키는 신으로도 나온다.

 브라마는 황금알에서 태어나 땅과 그 위의 모든 것을 차례로 창조했다고 한다. 후대의 종파적 신화들에서는 그가 비슈누의 배꼽에서 피어난 연꽃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종파적 신앙이 대두됨에 따라 브라마는 점차 비슈누와 시바에게 가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전 시대의 다양한 종파의 전통을 통합하려 했던 시도는 비슈누·시바·브라마를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신의 세 형태로 생각한 삼신일체 사상도 나타난다. 7세기에 정통 힌두교를 내세우는 스마르타교가 브라마를 빼고 다른 다섯 신을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는 권능을 상실했다. 오늘날 브라마만을 숭배하는 교단이나 종파는 없고, 그에게 봉헌된 사원도 거의 없다. 유일한 사원이 아즈메르(라자스탄 주) 근처 푸슈카르에 있다. 하지만 시바와 비슈누를 모시는 사원에서는 반드시 브라마 신상을 모시고 있다. 브라마는 예술 작품에서 흔히 4베다(인도 최초의 성전), 4유가(세계의 1순환기를 4단계로 구분한 것 중의 한 시대)4바르나(사회계급)를 상징하는 4개의 얼굴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4개의 팔에 제의도구, 염주, 책을 든 채 연화좌나 그의 탈 것인 백조(ha sa) 위에 앉거나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의 부인들인 사비트리와 사라스바티가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 회화에서는 누런 피부색에 흰 옷과 화환을 걸친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주 우리에게는 친근감이가고 낯익은 우리와 닮은 모습이다.

그의 성()인 고타마는 '가장 탁월한 수소'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 시대의 부족사회에 있었던 동물숭배, 특히 인도에서의 뿌리 깊은 소에 대한 숭배 관념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황소숭배(bull cult)는 사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종교의식으로 현대 사가들은 에게 해() 동부에서 시작되었으며, 파키스탄의 인더스 계곡에서 동부 유럽의 도나우 강까지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황소 신의 상징은 남근상이었고, 동쪽에서 황소는 종종 위대한 풍요의 여신의 배우자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생산의 남성적 원리와 정복할 수 없는 힘을 나타냈다. 많은 황소 조각이나 그림들이 발견되었는데, 부적이나 액막이로 사용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이것들은 부족의 성소(聖所)에 있는 커다란 상()의 복제품이었을 것이다. 황소 숭배는 역사시대에도 계속되었으며, 특히 인더스 계곡과 크레타 섬에서 중요하게 행해졌다.
인더스 계곡에서의 황소는 곧 시바신의 탈 것 내지는 화신으로 여겨졌으며 크레타 섬에서의 황소숭배는 황소자리의 전설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제우스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황소는 시바신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할 것은 비슈누신과 시바신의 관계이다. 간단하게 말해 비슈누는 보존과 유지의 신이고 시바신은 재창조를 위한 파괴를 상징하는 신이다. 외모 또한 서로 대비되는 특징을 보여주는데, 비슈누의 피부는 흑인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색이고 슈리바트샤라는 불멸성을 상징하는 곱슬거리는 털이 특징이다. 시바는 흰색이나 잿빛의 피부로 나타나고 보통 타래머리(ja maku a)를 하고 있다. 내 눈에는 마치 비슈누는 드라비다족, 시바는 아리아족의 인종적 특징을 각각 묘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그 각기 맡은 임무 또한 드라비다족을 침략한 아리아족의 역사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후대 인도의 역사에서 기득권 세력은 비슈누를 숭배하고 그 외 중심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은 시바를 숭배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계층이 섬기는 신의 모습이 각각 대립관계에 있는 계층의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지니고 있는 점이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마치 상대 계층을 서로 신으로 모시면서 화합을 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덧붙이면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브라마(梵天)는 회화 등에서 황인종임을 시사하는 누런 피부색을 나타내는 점 또한 눈에 띈다. 16세기 초 인도를 지배했던 무굴왕조의 역사 훨씬 이전 고대에 이른바 환단고기 桓檀古記등의 전승들이 비추는 바와 같은 잊혀진 역사가 있어 그런 식으로 투영되어 나온 건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카필라성에 살고 있던 석가족의 주신은 단연 제석천인 인드라였을 것이며, 태양신 수리야와 함께 범천, 그리고 시바등 이였을 것이다. 이렇듯 베다문화의 영향아래 있었던 석가족의 연원이 아리아족의 계통이며 북방의 이란 나아가서 스키타이족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비쳐내 준다는 생각이다. 그들의 사상적 배경에는 태양숭배의 바탕 위에 아리안의 신인 인드라, 그리고 베다시대를 통해 형성된 시바와 범천에 대한 신앙이 층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제신(諸神)을 주로 섬기는 석가족의 브라만 집안인 고타마 씨족이 싯다르타의 집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 등은 고대 우리나라에서 소도(蘇塗)의 주재자(主宰者)이기도 했던 지금에 와서는 무당과 같은 제사장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던 제정일치의 시대상과 비교하면 이해가 수월할 것이다. 나아가서 카필라 성이 그러한 소도가 있던 곳인지도 혹시나 모를 일이다. 소도는 곧 그리스·로마의 아실리(Asillie) 또는 아실럼(Asylum)이라는 점에서 말해보는 것이다. 초기 불교 정사인 기원정사(祇園精舍)의 다른 이름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으로 정확히 그 의미는 아실럼이 된다는 것도 덧붙여 둔다.

 석가족의 우두머리였던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이 싯다르타의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마야(Maya)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족 집단의 우두머리는 라자(raja)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이는 병권을 쥔 통치자로서 군림하는 군주의 칭호가 아니라 단순히 행정상의 수장(首長)이라는 직권을 의미하고 있었다.

 정반왕은 백정왕(白淨王진정왕(眞淨王)이라고도 하며, 음역하여 수도타나(首圖馱那수두단나(輸頭檀那열두단(閱頭檀: 또는 悅頭檀)이라고도 한다. 그는 사자협왕(獅子頰王: Simha-hanu)의 장자로 태어났으며 죽은 시기에 대해서는 76세라는 설과 97세라는 설이 있다. 정반왕반열반경 淨飯王般涅槃經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정반왕이 임종할 때 카필라바스투로 돌아와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한다.

 ‘정반(淨飯)’이라는 이름이 신에게 바치는 정결한 음식을 뜻한다고 볼 때 정반왕 가문의 계급은 대개 알려진 바인 크샤트리아가 아닌 브라만이라고 생각한다. 브라만 계급의 높은 지위는 그 연원이 후기 베다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인도 북부에 정착한 인도유럽어 사용 주민들은 사제계급인 브라만, 전사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농민층인 수드라(Sudra)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이들 4계급의 상대적인 지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브라만에 대한 뿌리 깊은 존경은 이들이 본래부터 다른 계급의 사람들보다 종교적인 순수성이 높으며 이들만이 중요한 몇몇 종교의식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힌두교 성전에 대한 연구와 암송은 전통적으로 브라만의 임무로 되어 있었으며 수세기 동안 인도의 모든 학문 활동도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브라만들은 많은 특권과 높은 교육수준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정치권력은 전사계급에 주어져 있었지만 브라만들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하고 지배계급의 사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브라만 계급의 종교적인 순수성은 수많은 금기사항을 지킴으로써 유지된다. 그 가운데에는 엄격한 음식물 선택, 낮은 계급 사람들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것 등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브라만들이 채식주의자들이다. 이와 같이 이런 브라만의 특징은 특히 정반이라는 이름에서 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싯다르타가 어려서부터 받았다는 베다의 암송교육과 함께 코살라국에 대한 종속국(從屬國)에 불과한 카필라바스투의 지위 또한 그곳이 다만 브라만이 통치했던 지역일 가능성 시사한다. ‘사문유관의 전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궁전에서 갇혀 지냈다는 정황도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접촉하기를 꺼려하는 브라만의 습관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정반왕을 크샤트리아의 권능을 수행하기도한 브라만 계급의 사람이라고 본다. 특히 현대에 있어서도 브라만 계급의 요리사는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 또한 정반이라는 이름이 브라만임을 나타낸다고 보게 한다.

 마야부인에 관해서는 구리(拘利, Koliya) 성주인 아누샤카(annu-sakya) 왕의 딸이라는 언급 외에는 싯다르타의 탄생 설화에 잘 알려진 신화적인 언급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이름인 마야(maya)란 힌두 철학의 근본 개념으로 산스크리트어로 마술또는 환상이라는 개념이다. 특히 정통 베단타 경전에 기초한 불이일원론(Advaita) 학파에서 자주 쓰는 개념이다.

 마야는 원래 마술의 힘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환상을 믿게 하는 신의 힘을 가리킨다. 그 후 마야는 현상세계가 진짜라는 우주적인 환상을 생성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불이일원론 학파에서 마야는 무한한 브라만(최고의 존재)이 유한한 현상세계의 모습을 띠게 하는 우주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경험적 자아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은 브라만과 동일한 자아의 참다운 성격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 의해 마야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초래된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의 어머님의 이름으로는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따라서 마야라는 싯다르타의 어머니의 이름 또한 후대에 신화에서 부여된 이름일 수도 있을 가능성을 살짝 내비친다.
이모이자 양어머니인 마하프라자파티(Maha-praj pati)의 이름 또한 흥미로운데, 프라자 파티는 산스크리트어로 모든 피조물의 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양육자로서의 격에 어울릴만한 이름이다. 그리고 알려진바 대로, 그녀는 최초의 비구니이다.
이렇게 싯다르타의 부모의 이름만 살펴보아도 예사로움 없이, 우리에게 숨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댓글 25개:

  1. 수다니파타의 마하박가의 첫 번째 묶음에 출가를 묘사한 장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422. 싯다르타의 대답: 대왕이여, 저 히말라야의 산 밑에 정직한 한 민족이 살고 있으니 이 민족은 예로부터 부(富)와 용기로 이름이 있는 민족이다.
    423. 이 민족의 성은 ‘태양의 후예’이며 석가족(釋迦族)으로 알려져 있다. 대왕이여, 나는 그 가문에서 태어났다.
    석지현, 『숫타니파타 (서울: 민족사, 1993)』,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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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태양은 불과 함께 빙하기 때인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을 오래된 숭배의 대상이다. 거의 모든 문화에서 태양이 주제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단지 일부(이집트, 인도유럽어족, 중앙 아메리카) 문화만이 태양에 관련된 종교들을 발전시켰다. 이런 그룹들은 모두 신성한 왕권에 대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태양을 이용함으로써 도시 문화를 발달시킨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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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rya
    힌두교와 힌두 신화의 태양 또는 태양신. 수리아는 인류의 조상 마누, 죽음의 주재자 야마, 신들의 쌍둥이 의사인 아슈빈 형제, 〈마하바라타 Mahbhrata〉의 위대한 전사 카르나, 원숭이의 왕 수그리바 등의 아버지라고 한다.
    사비트리·푸샨·아디트야·비슈누 등과 함께 태양을 신격화(神格化)한 호칭으로서 널리 숭상되었다. 베다 시대에는 이와 같이 다른 몇몇 신들도 태양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후기 힌두교에서는 이들 대부분이 하나의 신으로 통합되었다. 수리아는 비슈누·시바·샤크티, 그리고 가네샤와 같이 중세 5대 종파 중에 드는 한 종파에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수리아에게 바친 많은 사원들이 인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아타르바 베다》 《브라효마나》 및 서사시 시대를 통하여 태양신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으나, 후세 힌두교 신화에서는 비슈누가 태양신으로서 세력을 크게 증가시키게 되어 수리야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수리아는 모든 힌두교도들이 즐겨 찾는 신이며, 정통 힌두교도들이 매일 황혼녘에 태양을 향해 가야트리만트라를 낭송하지만, 현대 힌두교에서 수리아를 최고신으로 섬기는 것은 작은 신도집단인 사우라파에 국한되어 있다.
    《푸라나》 문헌에서는 3개의 눈과 4개의 팔을 가진 새빨간 빛깔의 인간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2개의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고, 세 번째 손으로는 축복을 내리고, 네 번째 손으로는 숭배자들을 격려한다. 그리고 흔히 붉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몸에서는 빛을 발한다. 수리야는 암흑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잠에서 깨워 활동하게 하며, 모든 신의 눈으로서 이승에 사는 생물의 행동을 감시한다. 그는 어둠을 몰아내고, 병을 치료하며, 세계를 따뜻하게 하고 밝혀주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수리아가 자신의 광채를 다 발산하면 너무 밝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에게서 일부를 떼어내어 이것으로 신들의 무기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아내(어떤 자료에서는 그의 어머니 또는 애인이라고도 함) 우샤스는 여명을 신격화한 것이다. 일곱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그녀의 뒤를 쫓아간다고 한다. 또한 날아가는 새에 비유되기도 한다.
    조상(彫像)에서는 흔히 '북부' 의상 혹은 스키타이 복장을 하고 있다. 꼭 끼는 웃옷과 목이 긴 신을 신은 그의 모습에서 이란식 태양 숭배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그는 7마리 말 혹은 7개의 머리를 가진 1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활짝 핀 연꽃을 들었으며 머리에 후광이 둘린 모습으로 흔히 묘사된다. 오리사 주 코나라크에 있는, 13세기에 지어진 수리아 데울라('태양 사원')는 수리아에게 봉정된 가장 화려한 사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사원은 한때 흑탑(黑塔)이라고 불렸다. 이 사원의 전체 구조는 바퀴 달린 전차가 태양신을 태우고 힘차게 달리는 말들에게 이끌려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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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ama
    야마(夜摩)·염마(焰摩:또는 閻魔)라고도 함.
    인도신화에서 저승세계를 주재하는 죽음의 신. 인도의 베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사자(死者)로서, 모든 사자를 다스리는 왕. 그 기원은 역사 이전의 인도·이란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야마는 ‘쌍둥이’와 ‘제어(制御)’라는 뜻이다. 즉 야마는 누이동생인 ‘야미’와 쌍둥이인 동시에, 죽은 자를 지배하는 왕이다. 오빠는 남자의 일을, 누이는 여자의 일을 다스린다는 뜻의 쌍(雙)으로 번역되거나, 고락을 같이 보상받는다는 쌍세(雙世), 죄인을 처단해서 다시 죄를 짓지 못하게 한다는 뜻의 차지(遮止), 죄인이 왕의 말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달아 고요히 쉰다는 정식(靜息), 죄인을 묶는다는 박(縛) 등으로도 번역된다. 아버지는 비바스바트, 어머니는 트바시트리의 딸 사라뉴이다. 풍채가 당당하며 붉은 빛을 띤 푸른 눈에 붉은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 해골로 장식한 지팡이와 올가미를 가지고 있으며 물소를 타고 다닌다. 눈이 4개 달린 2마리 개가 그의 왕국 입구를 지키며, 까마귀와 비둘기가 심부름꾼 노릇을 한다. 그가 최초로 죽은 사람으로 훗날 모든 사람들이 따르게 될 죽음의 길을 개척했다고 한다. 남쪽(죽음의 지역)의 수호신이며, 남쪽 땅 밑에 있는 죽은 사람들의 묘를 지배한다.
    야마가 지배하는 죽은 자의 세계는 《리그 베다》에서는 광명·녹음(綠陰)·춤·음악 등이 있는 이상적 낙토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야마는 죄를 벌주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선조들의 유쾌한 임금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아타르바 베다》에서 《브라흐마나》 문헌에 이르면 지옥의 관념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서사시에서의 야마는 무서운 사신(死神), 지옥의 주인으로 알려져 그 영토도 지하로 옮겨졌다. 죽은 자의 잘잘못을 가리고 그들의 징벌을 결정하는 공평한 심판과 다르마라자(Dharmarja)로 알려졌다. 야마는 지옥에서 귀졸(鬼卒)로 하여금 죄인을 고문·심판하게 하여 무거운 고통을 지운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베다》 일반의 야마신(神)의 관념을 받아들여 온화한 ‘야마천(夜魔天)’으로 되어 있고, 또한 ‘염마(閻魔)’로서 귀신세계의 주인, 명계(冥界)의 지배자·심판관으로 보고 있다. 염라는 티베트·중국·한국·일본의 신화에도 나오며, 여기서는 죽은 사람들의 거처를 지키는 비슷하지만 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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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Yima
    고대 이란의 전설에 나오는 최초의 사람, 인류의 조상, 태양의 아들.
    여러 종교 전승들을 모호하게 반영하는 서로 모순되는 전설들의 주인공이다. 쌍동이 누이동생인 이메와 한 쌍을 이루며, 인도 신화의 야마, 그 누이동생 야미와 대응한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이마'는 자신을 종교의 매개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신(아후라 마즈다)의 제의를 거절하고, 그대신 지상에 인간의 생명을 공고히 세우는 임무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덕(德)으로 인해 궁핍·죽음·질병·노화와 극단적인 기후가 지상에서 추방된 황금시대에 왕이 되었다. 어떤 이야기에 따르면 아후라 마즈다가 이마에게 무서운 겨울이 올 것이라고 말하자 황금시대가 끝났다고 한다. 이마는 아후라 마즈다에게 지하에 훌륭한 왕국을 건설하여 그 자체의 빛으로 환하게 밝히고, 그 안에 각 종(種)의 가장 우수한 개체들을 끌어들여 그 종자를 보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종자들은 그곳에서 겨울을 나면서 죽음을 면한 뒤 다시 땅으로 올라가 번식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敎) 《아베스타》의 제2권은 이마의 전설로 여겨지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최초의 사람 이마를 배제하고 대신 '가요마르트'라는 인물을 세웠다. 후기 페르시아 문학에서 이마는 '잠시드'라는 이름으로 여러 이야기에 등장한다. 대표적인 중세 페르시아어(語) 민족서사시 《샤 나메》에서 ‘잠시드’라고 나타는데, 그는 이 지상에 아직 늙음과 죽음이 없던 황금시대의 왕자로, 아후라 마즈다신(神)의 명령으로 인류를 불로불사(不老不死)·불한불서(不寒不暑)의 세계에서 살게 함으로써 언제나 청춘의 젊음을 잃지 않게 하였으며, 또 풍부한 물과 먹을 것으로 굶주림을 모르고 살게 하였으며, 사람들을 위하여 대지를 3배로 늘렸다. 또한 악신(惡神)으로 인한 겨울철의 대홍수가 있을 때는 생물의 대표를 성 안으로 불러들여 생물이 전멸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 후 그는 생물의 생식(生殖)을 꾀하여 육식(肉食)을 가르쳤는데, 이는 부정(不淨)을 범하고 신의 율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하는, 인간의 원리 사상에 관계된다. 서사시에 의하면 이마가 외람되게도 신이 되려고 하였기 때문에, 왕자의 영광이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왕국은 악마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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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Noah
    구약성서 《창세기》 6∼9장에 기록되어 있는 홍수 설화의 주인공, 당시의 의인. 아담의 10세손(창세 5:1~32, 루가 3:36)이고 라멕의 아들이다. 헤브라이어 Noah는 ‘휴식’이라는 뜻이다(창세 5:29). 아담으로부터 헤아려 10대째에 해당하는 노아시대에 하느님이 죄악이 넘친 세상(루가 17:27)을 홍수로 심판하기로 하였다. 이때 노아는 재앙을 피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方舟:길이 약 100 m에 달하는 3층으로 된 배)를 120년 걸려 완성, 가족(아내와 세 아들 내외)과 동물 1쌍씩을 이끌고 방주에 들어가 1년 10일 동안을 그 안에서 지내며 재앙을 피했다(히브 11:7, 창세 6∼8). 《창세기》에는 부정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가장 올바르고 완전한 사람이라고 노아를 기록하고 있다. 홍수 이야기와 함께 노아가 의인이었다는 사실은 신·구약성서에 자주 인용되고 있으며(이사 54:9, 에제 14:14·20, 마태 24:37∼38, 히브 11:7, 베드 Ⅱ 2:5), 또 포도를 재배하던 사람으로도 기록되어 있다(창세 9:20∼29). 노아는 홍수 뒤에 350년을 더 살다 950세에 죽었다. 홍수에서 살아 남은 노아의 세 아들 셈·함·야벳은 각지로 흩어져 세계 인류의 조상, 즉 각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창세 10). 영국 박물관에 보관된 니네베(니느웨) 성터에서 발굴된 비(碑)에는 엇나비스듬이 책을 가지고 방주를 탔다고 기록되어 있다. 엇나비스듬은 바로 노아를 가리킨 것인데, 그때에도 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도 《창세기》 8장 4절에 근거하여 탐색대가 터키 동쪽 끝 아라라트 산정으로 노아의 방주의 잔해를 찾아 나서기도 하였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바빌로니아 전승에 나오는 묵시문학적인 홍수 이야기들과 아주 비슷한데, 여기서는 우트나피슈팀이 노아의 역할을 한다. 이런 신화들은 비단 주인공들의 역할과 방주를 짓고 식량을 비축하는 등 홍수를 대비한 일, 홍수로 배가 떴고 그 뒤 물이 줄어들었다는 등 성서에 있는 홍수 이야기의 내용의 근원이 된다. 길가메시 서사시 제11토판에는 우트나피슈팀이 노아처럼 신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지어 우주적 파멸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노아라는 상징적인 인물은 5경이 편찬되기 전에도 이스라엘에 알려져 있었다. 〈에제키엘〉 14장 14절과 20절에서는 그가 의인의 모형이며,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하느님의 분노를 면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신약성서〉에서 노아는 예수가 아담의 후손인 것으로 묘사한 〈루가의 복음서〉의 족보(3:36)에서 언급된다. 예수는 '노아 시대'에 전 세계의 인간에게 밀어닥친 홍수 이야기를 세례의 보기로 언급했으며, 또한 그를 그 시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설교자로 묘사했는데, 이것은 유대교 외경(外經)과 랍비들의 저술에서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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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anu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첫번째 인간.
    중요한 산스크리트 법전인 마누 스므르티(Manu-smrti)의 전설적 저자이다. 마누라는 이름은 인도유럽어족의 '만(man)'과 같은 어원이며 산스크리트의 동사 '만'(man:생각하다)과도 어원상 관계가 있다. 베다에서 첫 번째로 제사를 지낸 사람으로 나오며, 첫 번째 왕으로도 알려져 있다. 중세 인도의 대부분 왕들은 그의 아들(태양의 혈통)이나 딸(달의 혈통)을 통해 그의 후손이 되었다고 한다.
    대홍수 이야기에 나오는 마누는 노아의 특성과 아담의 특성을 모두 지닌다. 〈사타파타 브라마나 atapatha Brhmaa〉를 보면 마누가 친절을 베풀었던 물고기로부터 전 인류에게 대홍수가 덮치리라는 경고를 듣게 된 경위가 설명되어 있다. 마누가 어느 날 아침 일찍 세수를 하고 있을 때 한 마리의 물고기가 그의 손 안에 들어와, 마누에게 자신을 길러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 대가로 멀지않아 닥칠 대홍수의 위험으로부터 마누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 뒤 대홍수가 일어나자 마누는 물고기가 시키는 대로 미리 준비해놓은 배를 물고기의 뿔에 붙잡아 매고 히말라야산(山)의 최고봉으로 대피하였다. 홍수가 물러가자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인 마누는 제물인 버터와 신 우유를 물에 부어 제사를 지냈다. 1년 뒤 스스로 '마누의 딸'이라고 하는 여자가 그 물에서 태어났다. ‘이다’라는 이름의 여자와 함께 마누는 그 뒤 땅 위에 다시 번성하게 된 새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마하바라타 Mahbharata〉(바라타 왕조의 대 서사시)에서 이 물고기는 브라마 신과 동일시되지만, 〈푸라나스 Puranas〉에서는 비슈누 신이 물고기로 변신한 마트시아라고 한다 (홍수 신화). 후세의 힌두교 우주론에 의하면, 브라마의 일생 중 하루는 만반타라(manvantara)라고 하는 14시기로 나뉘고 한 시기는 각각 3억 672만 년 동안 계속된다. 이 순환이 1번 지날 때마다 세상은 재창조되고, 새로운 마누가 나타나 다음 인류의 시조가 된다고 한다. 현재 세상의 나이는 마누 주기로 보면 7번째 주기에 해당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 설화와 유사한 점이 주목되나, 셈족(族)의 전설을 인도인이 옮겼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또한 마누는 최초의 법전인 《마누법전》의 창제자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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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해모수(解慕漱)’의 ‘모수’는 바로 잘 알려진 구약성경의 모세(moses)와 적어도 같은 고대어의 어원에서 나온 이름일 수 있다. 그의 아들 혹은 동부여의 정적(政敵)으로 신화에 나오는 ‘해부루(解夫婁)’ 또한 하필이면 히브리를 뜻하는 ‘헤브루(Hebrew)’를 연상시키는 강한 인상이 있다. 그리고 해부루가 해모수에게 밀려나 자리 잡은 ‘가섭원(迦葉原)’은 석가의 십대제자의 한사람인 마하가섭의 가섭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음사로, 산스크리트어인 카스파야(kasyapa: 飮光 혹은 龜로 의역됨.)로 연결시켜 계속 추적해 들어가 볼 수 있는 여지가 상당하다. 덧붙여 해부루에게 가섭원으로 천도를 건의한 재상의 이름이 또 하필이면 아란불(阿蘭弗)로 묘한 인상을 준다. 어쨌든 ‘해모수’의 ‘해’가 태양숭배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지금은 거의 통설인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한 것은 나의 글「신 한단고기」와 「신 삼국기」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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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Rudra
    ('포악하다'는 뜻의 산스크리트)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베다의 신으로 후기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의 이름 가운데 하나.
    시바는 루드라에서 발전한 것으로 간주되며, 양자는 모두 난폭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파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베다에서, 루드라는 죽음과 질병의 화살을 쏘는 궁신(弓神)으로 알려져 있어, 사람들은 그의 분노로 인해 죽거나 해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치유자로서 그리고 1,000가지 치료법의 원천으로서, 그는 자애로운 측면도 지니고 있다. 베다에서 폭풍의 신인 루드라와 마루트는 떼를 지어 다니는 여러 신들인데, 단수로서의 루드라는 이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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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Krishna
    (산)Ka.
    인도의 신들 가운데 가장 널리 숭배되고 사랑받는 신의 하나.
    그는 최고신으로 숭배되기도 하며 힌두교 비슈누 신의 8번째 아바타라[化現]로 숭배되기도 한다. 박티(신에 대한 헌신적 사랑)를 강조하는 수많은 종파들이 크리슈나를 중심적인 숭배 대상으로 삼았으며, 오랜 세월 시·음악·회화 등의 분야에서 풍부한 종교적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크리슈나에 관한 신화는 대개 위대한 서사시 〈마하바라타 Mahbhrata〉, 5세기에 그 부록으로 첨가된 〈하리방샤 Harivaa〉, 그리고 〈푸라나〉 문헌들 중에서 특히 〈바가바타 푸라나 Bhgavata-Pura〉 제10·11권 등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문헌들에 따르면, 크리슈나(문자 그대로는 '검은' 또는 '구름처럼 어두운'이라는 뜻)는 야다바족의 바수데바를 아버지로, 마투라(지금의 우타르프라데시에 있음)의 사악한 왕 캄사의 누이 데바키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캄사는 자신이 데바키의 아들에 의해 파멸되리라는 예언을 듣고 데바키의 아이들을 살해하고자 했다. 크리슈나는 남몰래 야무나 강 건너 고쿨라(또는 브라자라고도 하며 지금의 고쿨에 해당하는 지역)로 보내졌으며, 그는 거기서 목동들의 지도자인 난다와 그의 아내 야쇼다에 의해 키워졌다.
    소년 크리슈나는 주로 짓궂은 장난으로 유명하지만, 많은 기적도 행했으며 악마들을 죽이기도 했다. 청년 목동 크리슈나는 연인으로 알려져, 목동의 아내와 딸들은 그의 피리 소리를 들으면 집에서 나와 숲속의 그에게로 달려가 함께 열광적으로 춤추곤 했다 (고피). 그러한 여인들 가운데 아름다운 라다가 특히 크리슈나의 사랑을 받았다. 마침내 크리슈나와 그의 형 발라라마는 마투라로 돌아가 사악한 캄사를 죽인다. 크리슈나는 그 지역이 안전한 곳이 아님을 깨닫고 야다바족을 이끌어 카티아와르의 서쪽 해안으로 가서 드바르카(지금의 구자라트 주 드와르카)에 도읍을 정했다. 그는 루크미니 공주와 결혼했고, 후궁도 여러 명 두었다. 크리슈나는 카우라바 형제들과 판다바 형제들 사이에 대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느 한쪽만 지지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한편에는 자신이 직접 참여하고 다른 한 편에는 자신의 군대를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판다바 형제들이 전자를 선택함에 따라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의 전차를 모는 일을 맡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크리슈나가 드바르카로 돌아온 어느 날 야다바족의 지배세력 간에 한 차례의 큰 싸움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그의 형과 아들이 살해되었다. 크리슈나가 슬퍼하며 숲속에 들어가 앉아 있었는데, 사냥꾼이 그를 사슴으로 착각해 쏘았고, 그 화살에 뒤꿈치를 맞고는 죽었다.
    크리슈나라는 인물은 쉽게 분석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히 여러 이질적 요소로 구성된 복합적인 인물이다. 종교적 지도자로도 추정되는 브리슈니의 왕자 바수데바 크리슈나는 서기전 5세기경부터 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했고, 목동 크리슈나는 인드라 신을 섬기는 베다 중심의 종교에서 갈라져 나온 목축부족의 신이었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이러한 요소들의 조화를 통하여 나타난 크리슈나는 궁극적으로 최고신 비슈누 나라야나와 동일시되었으며, 곧 그의 아바타라의 하나로 여겨졌다. 크리슈나에 대한 숭배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신적인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의 유사점 추구이다. 예컨대 청년 크리슈나와 여인들의 유희는 신과 인간의 영혼 간에 존재하는 사랑의 교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크리슈나의 생애와 관련된 수많은 다양한 전설은 회화와 조각을 통해 풍요롭게 표현되었다. 소년 크리슈나는 팔과 무릎으로 기어가거나 버터 한 덩이를 손에 들고 기쁨에 넘쳐 춤추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크리슈나의 모습은 청년 크리슈나가 그를 흠모하는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피리를 부는 모습이다. 17, 18세기의 라자스탄과 파하르 지방의 회화에서는 크리슈나가 검푸른 피부 위에 노란색 도티(허리를 감싸는 인도 고유 의상)를 걸치고 공작새 깃털로 만든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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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도올 선생님의 책 83쪽에 나와 있는 인드라(Indra)신은 바루나(Varuna)신과 대결하는 구도라고 하신 말씀은 오류가 있어 보인다. 인드라신은 크리슈나라는 다른 신(비슈누 신의 8번째 아바타라[化現]로 숭배되기도 한다.)과 대립관계에 있다고 고대 전설 모음집인〈푸라나 Puras〉에 나와 있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른바 베다시대에는 바루나신이 최고신으로 숭상 받았고, 그 외의 시대에서는 인드라신이 숭상 받아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고 따라서 ‘인드라는 브라만계급을 대변하고 바루나는 크샤트리아계급을 대변하는 것이다.’라고 이해하고, '따라서 베다시대는 -곧 중세에 교황과 세속왕의 투쟁에서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던 시절과 비교하면 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크샤트리아 계급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루나신은 미트라(mitra)신과 협력하는 관계로서 미트라는 신들의 통치권 가운데 사법적인 측면,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반면, 바루나는 마법적이고 정신적인 측면, 즉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오히려 바루나신이 브라만계급을 대변하고 미트라신은 크샤트리아 계급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것이다. 그럼으로 차라리 베다시절에는 인드라신이 바루나신 이었고 이것은 곧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선생님이 참조하신 문헌의 오류를 무심결에 그대로 언급하신 것은 아닌가 한다.
    김용옥,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1 (서울: 통나무, 2002』, 82쪽~8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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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용옥 선생님조차 이 견해를 따르고 계시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급하신 삼국유사 전체에서 환인(桓因)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언급하신 ‘석가제파인다라’에서 ‘제파(提婆)를 슬그머니 제환(帝桓)’으로 바꾸시고는 데바(deva)와 연결하시고 계신다. 그러나 ‘제파’는 음사한 것으로 보이나, ‘제환’을 음사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은가 한다. 데바남(devanam)의 음사가 ‘제환’이 될 수 는 없을 것이다.
    김용옥,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1 (서울: 통나무, 2002』8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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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古記云: 「昔有(謂也)」 이라고 되어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훼괴한 말이 나왔는지 뻔히 짐작할 만하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제석을 이름이다.)’라는 내용밖에는 없다. 더군다나 ‘桓國’을 일본 식민지 시절에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를 식민사관에 입각해서 편찬하면서 ‘桓因’이라고 임의로 개찬한 사실을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적하여 항의한 것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던 사실이 있었음을 알아야만 한다. 아직까지도 이런 식민사관에 찌든 흔적이 남아있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내용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까지 버젓이 실려 있음은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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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soma
    고대 인도에서 예배의식 때 쓴 확인되지 않은 식물.
    베다인이 이 식물의 즙을 중요한 제물로 신에게 바쳤다. 줄기를 돌 사이에 넣고 눌러 나온 즙을 양털직물로 거른 다음 물과 우유를 섞는다. 맨 처음에는 신에게 헌주(獻酒)하고 나머지는 성직자와 제물을 바친 사람이 먹는데, 환각을 유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원기를 돋우는 효과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인격화된 신(神)인 소마는 '식물의 주인', '병의 치료자', '부(富)의 수여자'였다.
    소마 의식은 고대 이란의 하오마(haoma) 의식과 비슷한 점이 많아 고대 인도유럽어족과 유사한 신의 영약에 대한 믿음을 알 수 있다. 하오마와 같이 소마식물도 산지에서 자라지만 실제 원산지는 하늘로써 독수리가 땅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마를 압착하는 것은 모든 생명과 그 생명의 생장을 가능하게 하는 양분을 주는 비와 관련되어 있다. 베다 고전기 이후에는 소마를 달과 동일시했는데 신이 마시면 달이 작아지나 주기적으로 다시 커진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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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brahman (梵/범)
    인도 정통 브라만교 사상의 최고원리. 바라문(婆羅門)은 산스크리트 brahman의 음사(音寫)이다. 브라만은 처음에는 《베다》의 찬가·제사(祭詞)·주사(呪詞)를 뜻했으며, 또한 그 본질로서의 신비적인 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것이 브라마나 시대에 이르러서는 우주를 창조하고 일체를 지배하는 원동력으로서의 근본이라 하여 세계의 근원적 창조원리로 보았으며, 우주의 일체는 모두 브라만으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특히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이 우주적 원리로서의 브라만과 개인적 원리로서의 아트만[我]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 발생하였다. 원리로서의 브라만은 중성(中性) 명사이지만, 그 후 구체적으로 신격화(神格化)하여 남성적인 브라마[梵天]라는 말이 생겼다. 이 신은 우주의 최고신으로 일체를 창조·지배한다고 한다. 이것이 불교에 들어와서는 불교 수호신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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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Prajpati
    (산스크리트로 '모든 피조물의 신'이라는 뜻)
    고대 인도 베다 시대의 창조주 가운데 하나로 베다시대 뒤에는 힌두교의 주신(主神)인 브라만과 동일시되다가 점차 브라만의 중요성이 프라자파티를 능가하게 되었다. 일찍이 베다 문학에 나타난 세계의 창조주에 대한 수많은 견해들은 여러 가지 최초의 형상, 즉 황금달걀(Hiranyagarbha)·완성자(Visvakarman) 등과 같은 형상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몇몇에 프라자파티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후 이 말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인 유일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어떤 창조이야기에 따르면, 프라자파티는 고행(tapa)을 수행하여 자기 자신을 먼저 준비한 후 우주와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냈고,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최초의 물을 창조했다고 한다. 다른 것들을 창조할 때 그를 도와준 여성은 신성한 언어의 화신인 ‘바크’였다. 그러나 때로 그의 여성 동료는 새벽을 상징하는 ‘우샤스’로 정해지기도 하는데 우샤스는 또 그의 딸이라고도 한다. 여러 명으로 구성된 프라자파티는 브라만의 '마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비록 전문가들은 그들의 수를 위대한 일곱 리시스(고대 성자들)와 연관시키지만 일반적으로 이들은 10명으로 간주되었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로서 중성(中性)인 브라만과 달리 남성으로 표현되는 브라마(범천)는 베다의 창조신 프라자파티와 연관되어 있고, 뒤에는 프라자파티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프라자파티는 결국 범천이라는 뜻이 된다. 요컨대, 원형인 프라자파티는 한마디로 대모신(大母神)으로 보고, 그의 남성적 인격인 바로 범천이다.
    덧붙여, 마하프라자파티의 상징인 황금달걀은 우리도 가지고 있는 북방의 천손신화와 함께 남방의 난생설화와 반드시 연결시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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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Trimurt
    (산스크리트로 '3가지 형태'라는 뜻)
    힌두교에서 브라마·비슈누·시바의 삼신합일(三神合一)의 사상.
    학자들은 이 사상을 서로 다른 일신교적 접근과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에 대한 철학적 가르침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로 간주한다. 때로는 힌두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힌두교의 트리무르티는 그리스도교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거의 없다. 이 사상은 칼리다사의 시 〈쿠마라의 탄생 Kumrasambhava〉(4세기경~5세기)에 고전적 표현 형태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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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스마르타派 (Smarta sect)
    재생족(再生族), 즉 상위 세 계급(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에 속한 사람들로 구성된 정통 힌두 교파.
    주로 브라만 계급인 이 교파의 신도들은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을 모두 섬기며 고대 수트라에 정해놓은 의례와 행위의 규범들을 고수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스마르타라는 이름은 스므리티라는 산스크리트에서 유래되었다. 베다가 신의 계시로 여겨지고 있는 데 반해 스므리티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일군(一群)의 문헌이다. 스마르타파가 중시하는 경전들은 스므리티 문학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는 불이일원론적(不二一元論的 Advaita) 베단타를 주창한 8세기 철학자 샹카라가 있는데, 그를 이 교파의 창시자라고도 한다. 그가 카르나타카(이전의 마이소르 주)의 스링게리에 세운 사원은 이 교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사원의 원장인 자가드구루('세계의 스승')는 남부 인도와 구자라트의 스마르타교도들 사이에서 종교적 권위를 지니며 전인도의 주요 종교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북부의 스마르타파는 자신들을 부르는 명칭에 굳이 샹카라의 추종자들임을 나타내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부와 구자라트 지방의 스마르타파와 차이를 나타낸다. 북부에는 순수한 스마르타 사원의 수도 적다.
    스마르타교도들은 특정 신을 다른 신들보다 우위에 두기도 하며 오늘날에는 시바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판차야타나 푸자('五神殿의 공양')에서는 시바·비슈누·샤크티·수리아·가네샤의 다섯 주신(主神)을 모두 정성을 다해 섬긴다. 스마르타 브라만들은 자신들을 정통이라고 생각하며 힌두교의 전통적 가치를 엄격히 지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온갖 학문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 뒤에 샤스트리(산스크리트로 '학식있는 사람'이라는 뜻) 또는 타밀어로 아이야르라는 경칭을 붙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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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男根崇拜 (phallicism)
    성행위나 성기(性器)에 의해 상징되는 생식원리를 숭배하는 것.
    성행위나 남녀 성기의 상징과 관련된 종교 행위를 성기숭배 제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떤 제의가 성기숭배를 하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형식의 성의례(性儀禮)들은 성교가 다산(多産)을 촉진한다고 믿는 것, 신년 축제기간의 오르지(orgy) 경우처럼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 문화를 원초적이고 강력한 혼돈의 상태로 되돌려놓음으로써 창조적 에너지가 홍수처럼 방출한다고 믿는 것, 연금술, 힌두교의 비의적 명상체계인 탄트리즘(Tantrism)처럼 성교가 상반된 것을 하나로 융합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그 밖의 전통에서 숭배의 대상이 성기의 표상(예를 들어 그리스와 로마에서 디오니소스 행렬 때 남근상[男根像]을 들고 가는 것, 인도에서 남성 링가와 여성 요니)이나 뛰어난 성적 능력을 가진 신(그리스의 프리아푸스)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볼 때 숭배를 받는 것은 성기 자체보다는 성기가 표상하는 창조적 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속신이 있는데 특히 남근석(男根石)은 이것의 대표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암탑과 수탑, 여근암과 남근암, 성기바위, 씹섬바위, 공알바위, 처녀바위, 삐죽바위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선돌이나 입암(立岩), 미륵암 등의 대응물들이 그대로 남근신앙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남근석은 남자의 상징을 따라서 뾰족한 형태나 길고 높이 솟아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에 따라서는 남근석과 여근석을 같이 두어 대비시키기도 한다. 이들 속신은 대개 아들 낳기를 바라는 유교사회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여자들이 치성을 드린다.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기원하는 경우가 많으나 마을집단의 공동체신앙으로서도 기능한다. 칠석 같은 명일에 백설기 등을 시루째 놓거나 맑은 물을 떠놓고 빈다.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개인적 염원을 기도드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며, 제를 지내는 사람은 금기를 하여 원하는 바가 잘 성취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 섬지방에서는 남근석을 만들어 여신당에 둠으로써 풍어를 기원하는 생산기원적 의미도 지닌다. 가령 동해안의 삼척 해랑당에는 남근석을 여러 개 깎아서 당목에 걸어두어 마을에 제를 지냄으로써 마을의 풍어를 기원하고 바닷일의 안전을 도모한다.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남근숭배는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었던 부근당(府根堂)이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 五州衍文長箋散稿〉에서 '접하는 네 벽마다 많은 나무로 만든 음경(陰莖)을 걸어놓으니 음탕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여 당집에 남자성기를 상징하는 목각물을 걸어두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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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Siva
    Siwa, Shiva라고도 씀.
    힌두교 주요신 가운데 하나.
    인도의 시바파에서 최고신으로 숭배된다(시바파). 시바(산스크리트로 '상서로운 존재'라는 뜻)는 모순된 듯한 특징들을 통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복잡한 인도의 신 가운데 하나이다. 파괴자인 동시에 재건자이며 위대한 고행자이자 관능의 상징이다. 또한 영혼의 자비로운 목자이자 분노에 찬 복수의 신이기도 하다. 시바 신에게 여러 역할들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은 보다 앞선 시기의 신화적 인물들과 시바를 동일시한 결과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애매한 존재에다 보완적인 특징들을 결합시키는 힌두교의 경향에서 생겨난 것이기도 하다.
    시바의 배우자는 우마·사티·파르바티·두르가·칼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시바는 또한 때때로 최고의 여신 샤크티와 짝을 이루기도 함). 이들 부부는 두 아들, 곧 머리를 6개 가진 스칸다와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를 거느리고 히말라야의 카일라사 산에서 사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바의 탈것과 시바의 동물 형상은 황소 난디이다. 난디의 조각상은 시바를 모신 모든 사원에서 본당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사원과 개인의 사당에서 시바는 그의 근원적인 상징인 링가, 즉 남근상(男根像)으로 숭배된다 (링가).
    시바는 보통 회화나 조각품에서 흰색이나 잿빛으로 그려지고 또한 우주의 바다 소용돌이에 던져져 인류를 파멸하려고 위협하는 독약을 목구멍에 삼켰기 때문에 목은 푸른색이며, 머리카락은 타래를 땋았으며(jamakua) 초승달과 갠지스 강(전설에 의하면 시바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통해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갠지스 강이 땅 위에 흐르게 함)으로 장식했다. 3개의 눈을 가졌는데 3번째 눈은 내면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지만 외부의 사물에다 초점을 맞추어 바라볼 때는 그 사물을 태워 파괴하는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해골목걸이를 걸치고 있으며 목에는 뱀을, 양손(때로는 4개의 손)에는 사슴가죽, 삼지창, 작은 북 및 끝부분이 해골로 장식된 방망이를 들고 있다. 시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배우자인 파르바티와 아들 스칸다와 함께 평안한 분위기 속에서, 또는 우주의 무용가(나타라자), 나체 고행자, 탁발하는 거지, 요가 수도자, 자신과 자신의 배우자가 한 몸으로 된 반남반녀(아르다나리슈바라)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수식어로는 '샴부'(자애로운)·'샹카라'(은혜로운)·'파슈파티'(야수의 주)·'마헤샤'(위대한 지배자)·'마하데바'(위대한 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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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Taurus
    양자리와 쌍둥이자리 사이에 위치한 황도대(黃道帶)의 별자리.
    적경 약 4시 20분, 북적위 16°이다. 황소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알데바란(α 타우리)은 1등성이다. 이 별자리에는 게성운(M1), 플레이아데스 성단, 히야데스 성단이 포함되어 있고, 점성학에서 황도 12궁(宮)의 2번째 별자리이며, 4월 20일부터 5월 20일까지 지배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별자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에우로파를 납치하기 위해 황소로 변한 제우스와 관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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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Vishnu (산)Visnu.
    힌두교의 주요신의 하나.
    세계를 지키고 유지하며 다르마(도덕률)의 원상복구자로 숭배된다. 힌두교의 또 다른 주요신인 시바처럼 비슈누도 작은 종파의 여러 신들과 지방의 영웅들을 결합한 복합적인 신이다. 그는 주로 자신의 아바타라[化身], 특히 라마와 크리슈나를 통해 알려져 있다.
    비슈누는 베다 시대에는 주요 신이 아니었다. 〈리그베다〉(서기전 1400경~1000)의 몇몇 찬가에서 그는 태양과 관련되어 있으며 세 걸음으로 우주를 건넜다는 유명한 전설과 연계되어 있다(이 전설은 뒤에 자신의 난쟁이 화신 바마다와 관련된 신화의 기초가 됨). 다른 화신들의 전설도 초기 문학작품에서 발견되는데, 그 화신들은 서사시 〈마하바라타 Mahbharata〉 시대에 이르러 비슈누와 동일시되기 시작했다. 이론적으로 비슈누는 악과 싸울 필요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어느 부분이라도 나타내기 때문에 화신이 수없이 많지만 실제로는 10가지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아바타라). 사원의 비슈누 신앙은 배우자인 락슈미(슈리라고도 함)와 부미데비(대지의 여신)를 거느리고 앉아 있거나, 여러 가지 무기를 들고 서 있거나, 주기적으로 세계가 소멸하고 다시 생겨나는 시기 동안 우주의 바다에서 똬리를 튼 셰샤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서 있는 비슈누는 왕족의 옷을 입고 네 손(때로는 두 손)에는 소라(akha)·바퀴(cakra)·곤봉(gad)·연꽃(padma)을 들고 있다. 가슴에는 그의 불멸성의 상징인 '슈리바트사'라고 알려진 곱슬거리는 털이 있고 목에는 행운석 카우스투바를 걸고 있다. 회화에서 비슈누는 일반적으로 검은 피부색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그의 화신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비슈누의 탈것은 '가루다'라는 새이며, 그의 천계(天界)는 바이쿤타이다. 신도들이 신앙행위로서 반복 암송하는 비슈누의 1,000개의 이름 중에는 바수데바·나라야나·하리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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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고대에 'asylum'은 피난처 또는 보호처를 가리켰으며, 그곳에서 사람을 강제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신성모독이 되었다. 그러한 성지(聖地)로는 사원·제단(altar), 후기에는 교회 등이 있었다(聖域). 나중에 와서 그것은 빈민계층이나 다른 불쌍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한 시설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의미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고아원(orphan asylum)과 정신병원(insane asylu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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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不二一元論
    Advaita (산스크리트로 '不二論', ' 일원론'이라는 뜻)
    인도의 정통 철학인 베단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파.
    추종자들은 이 학파의 주요교리가 이미 〈우파니샤드 Upanisad〉에 충분이 나타나 있고 〈베단타 수트라 Vedanta-sutras〉로 체계화되었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후기 〈망두키아 우파니샤드 Mandukya Upanisad〉에 대해서 시적 형식으로 주석을 단 〈망두키아 카리카 Mandukya-karika〉의 저자인 7세기의 사상가 가우다파다에서 시작된다. 가우다파다는 더 나아가 공(空 Sunya)을 설하는 대승불교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이원성이란 없으며, 마음은 깨어 있거나 꿈을 꾸거나 간에 환상(maya)을 통해 활동하며 불이일원론만이 궁극적인 진리라고 주장한다. 이 진리는 환상의 무지로 가려져 있다. 저절로 무엇이 생기거나 다른 것에서 무엇이 생겨 나오는 일은 없다. 결국 어떤 개별적인 자아나 영혼(jiva)이란 없고 아트만만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개체들은 주공간의 일부가 단지 속의 공간으로 한정되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한정될 수 있을 뿐이다. 그 단지가 깨지면 개별적인 공간은 다시 주 공간의 일부가 된다.
    중세 인도의 철학자 샹카라(700~750경) 또한 가우다파다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주로 〈베단타 수트라〉에 대한 주석서 〈샤리 라카 미망사 바시아 Sari-rakamimamsa-bhasya〉('자아 연구에 대한 주석서'라는 뜻)에서 그러하다. 샹카라의 철학은 논리적 분석에 의해 경험적인 세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는 곧바로 절대자(브라만)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확히 해석하면 〈우파니샤드〉는 브라만의 본질을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그는 완벽한 인식론을 발전시켜 현상적인 세계를 실재로 보는 인간의 오류를 설명하려 한다. 샹카라의 기본적인 견해는, 브라만은 실재하며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변화나 이원성·다양성도 환상이다. 자아는 브라만과 결코 다르지 않다. 이런 동일성을 통찰하게 되면 정신이 해방된다. 브라만은 현상적 경험의 형태일 뿐인 시간·공간·인과를 넘어선다. 브라만 내에서 또는 브라만으로부터의 차별은 불가능하다. 샹카라는 동일성을 말하거나('네가 그것이다') 차별성을 부정하는('여기에 이원성이란 없다') 경전들을 가리키며, 아무런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nirguna) 브라만의 참된 뜻을 밝히고 있다고 말한다 (니르구나). 인격적 브라만에 속성이 있다(saguna)고 하는 그 밖의 책들은 브라만의 참 본질이 아닌 인격적 신(Isvara)의 측면에서 브라만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유일하며 무한한 브라만을 다양하고 무한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덧붙이는 버릇(adhyasa) 때문이며 그 때문에 나 아닌 것을 나로 여긴다('나는 피곤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알아차린다' 등). 이 버릇은 인간의 무지(ajnana, avidya)에서 생긴 것으로, 브라만의 정체를 깨달을 때만 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경험적인 세계가 전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하는 브라만을 잘못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밧줄을 뱀으로 잘못 안 경우 밧줄만 있고 뱀은 없지만 밧줄을 뱀으로 생각하는 한 그것은 하나의 뱀이다.
    샹카라에게는 많은 추종자가 있어 그의 작업을 계승하고 정교화 했는데, 그중에서도 9세기의 철학자 바차스파티 미슈라가 유명하다. 불이일원론의 문헌은 대단히 방대하며 현대인도 사상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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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이글은 너무 길어서 좀 나눠야 되겠다는 생각.. 하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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