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싯다르타의 탄생
(1) 싯다르타의 출생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났다. 출생연도에 대해서 서기전 6세기 혹은 서기전 5세기로 약 100년의 시차로 견해가 갈리는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 특히 남방의 불교도는 서기전 624년에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은 1956년이 불멸 2,500년이라 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를 계기로 남방불교의 불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역사적 고증에 따른 것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스리랑카의《도사(島史) Dipavamsa》와 《대사(大史) Mahavam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W.가이거가 주장한 서기전 563∼483년 설이다. 이 설은 중국의 《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에 전하는 중성점기(衆聖點記), 즉 불멸(不滅) 후 최초의 율장(律藏)이 결집되었을 때 제1점을 찍기 시작하여 매년 1점씩 쳐서,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7년(490)까지 975점에 이르렀으므로 불멸이 서기전 485년이라는 설(서기전 565∼485년)과도 대략 일치된다. 그 외에 서기전 463∼383년 설 이 있다.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한 아소카 왕의 즉위 연도가 입멸 후부터 100~160년이 경과된 후라는 논서들의 기록을 근거로 하는 이 북방설의 경우 아소카 왕의 즉위 연도가 다르게 전하는 데 기인한다. 한국 불교는 1967년부터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결의에 따라 남방불교의 불기를 따르고 있다. 이에 의하면 입멸 연도는 서기전 544년이며 석가모니의 생존 기간은 80년이므로 출생 연도는 서기전 624년이 된다
석가모니의 탄생은 태몽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그녀의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왕비와 수행원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데바다하에 있는 친정으로 가던 중에 두 도시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던 룸비니(Lumbini)라는 동산에서 싯다르타를 낳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석가족의 토템인 살라나무 숲은 룸비니라는 지모신(地母神)을 받드는 곳이었으므로 출산의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것은 왕족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신의 양팔로부터 발생했다는 〈리그베다 Rigveda〉이래의 전승과 관련되어, 석가모니가 크샤트리아 계급의 출신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냥 보통사람과 다른 출생을 묘사하다보니 그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석가족 내에 카스트의 구별이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굳이 말한다면 싯다르타는 브라만 계급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행본기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땅에 떨어지면서 일곱 걸음을 걸어가 손을 들고서 말하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서 오직 나만이 높도다. 세 세계가 모두 괴로움이므로, 나는 장차 편안하게 하리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일곱 걸음의 일곱이라는 숫자는 대개의 문화권에서 길함을 나타내는 숫자이므로 이러한 상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근본 경전에 속하는〈수행본기경〉의 이러한 언급에서 이른바 부처님과 불법의 의의(意義)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바로 ‘괴로움임을 알고 그를 편안하게 함’이 곧 불법이고 부처님이 오신 이유라고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대에 와서도 불법을 왜곡하고 신자들에게 중생이라는 굴레를 억지로 덮어씌우고 도리어 어리석게 만들며 맹종을 요구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야할 보시를 오히려 강요하는 등의 여러 폐단이 있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을 사칭하여 신자들을 도리어 괴롭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오시자마자 일갈하셨다는 ‘장차 편안케 하리라’라는 말씀은 단순히 석가모니를 신격화하기위한 설화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불법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 있는 귀중한 기준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중생을 괴롭히기만 하거나 결과적으로 중생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닌 것이다.’
대승불교 문헌이라고 할 〈보요경〉에서는 조금 다르게 전하고 있다. 태자가 땅에 떨어지자 홀연히 몸이 보배 연꽃 위에 싸여 있으며 일곱 발자국을 옮기면서 “내가 장차 천상이나 인간을 제도할 도사가 되어 나고 죽음의 괴로움을 끊고 모든 중생으로 길이 안락하게 하리라”라고 선언하였다. 이때 제석천왕(帝釋天王)과 대범천왕(大梵天王)이 향수를 내리며 아홉용이 내려와서 그 향수로 목욕시켰다고 한다.
같이 대승불교 문헌으로 〈방광대장엄경〉에서는 더욱 발전되고 상세화 된 내용을 전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태자가 나면서 동방으로 일곱 자국을 옮기는데 발자국에 연꽃이 솟아나며 말하기를 “내가 온갖 훌륭한 법을 얻어서 중생을 위하여 설하리라”하고 또 남방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천상 인간의 공양을 받으리라.” 하였고, 또 서방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거룩하리라. 이것이 곧 최후의 몸으로서 나고 늙고 죽음을 끝내리로다.” 하였다. 그리고 북방으로 다시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나는 장차 모든 중생가운데 최상이 되리로다.”하였다. 그리고 다시 하방(下方)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나는 장차 온갖 마군을 항복받고 또 지옥의 타는 불을 끄며 법의 구름과 비로써 중생을 안락케 하리라.‘하고, 상방(上方)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나는 장차 일체중생의 우러러보는 바가 되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말씀들은 삼천대천세계에 그 음성이 떨쳤다고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갓 태어나자마자 무려 마흔 두 발자국이나 걸리고 제법 많은 말씀을 하게 하는 등 신생아 치고는 다소 과한 노동(?)을 하시게 만든 이 기록은 초기 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변해가면서 불교에 어떤 사상적 첨가가 이루어지고 변형되어갔는가가 잘 나타난다. 부처님의 말씀의 형식을 빌어 여러 가지가 첨가되며 바뀌어져 나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왕’이라는 호칭과 이러한 기록 등이 브라만 계급이었던 싯다르타를 크샤트리아라고 잘못 전해지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석가모니와 같은 종교적 위인은 보통의 방식으로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또 인도에서는 오른쪽을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전설이 성립했다고 생각한다.
탄생 장소는 현재 ‘룸민데이’라 불리며 지금은 네팔의 영토에 속한다. 네팔 남부 테라이 지방의 한촌(寒村)으로 석가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 km 서쪽에 있다. 서기전 3세기의 유명한 아소카 왕이 그 탄생지를 기념하여 세운 석주가 후대에 1896년 커닝암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석주에는 ‘이곳에서 샤카족의 성자(聖者) 불타(佛陀)가 탄생한 것에 연유해서 룸비니 마을은 세금을 면하고, 또 생산의 1/8만을 납입한다’라는 취지의 법칙(法勅)이 새겨져 있어 석가탄생지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룸비니는 ‘남비니(藍毘尼)’로 음역한다.
생후 7일째에 어머니 마야 부인은 산후의 상태가 악화되었던 탓인지 사망했고, 석가모니는 어머니의 동생인 이모 마하프라자파티(Mahaprajapati; 摩詞波閃波提: 大愛道)에 의해 양육되었다. 생후 5일째 또는 7일째의 명명식에서 싯다르타(Siddhartha)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산스크리트로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이므로 이름 또한 아마도 후대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석가모니의 탄생일에 관해서는 2월 8일, 베사카 달의 후반 8일 혹은 후반 15일 등 여러 전설이 있다. 석가모니의 전기를 취급한 것으로서 한역(漢譯)된 경전에서는 4월 8일이라 하는데, 이는 번역자가 인도의 베사카 달이 음력 4월에 상당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탄생일로 믿고 있으나, 남방의 불교도는 베사카 달의 보름날에 탄생·성도·열반이 있었다는 전승에 근거하여 '베사카 제(祭)'를 성대히 시행하고 있다(스리랑카에서는 '웨삭제'라고 함).
재미있어 언급하고 싶은 것은 〈수행본기경〉에는 싯다르타가 출가할 때 타고 나가는 말 ‘칸타카’ 또한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한다. 말의 평균수명이 20~25년에서 30~35세 정도라고 볼 때 29세에 출가한 싯다르타는 몹시 늙은 스물아홉 살짜리 말을 타고서 출가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 또한 출생과 동시에 출가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는 신화적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타계한 연도, 즉 입멸(佛滅) 연도로부터 시작되므로 불기는 석가모니가 입멸한 이후부터 경과된 햇수를 가리킨다. 따라서 현 2012년은 불멸기원 2556년이 된다.
답글삭제藍毘尼園 (Lumbini)
답글삭제지금의 네팔 남쪽 경계선 부근에 있는 작은 숲.
불교 전설에 따르면 여기서 마야 왕비가 사라수 가지를 잡고 서 있는 동안 장차 붓다가 될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팔리 경전에서는 2군데, 즉 〈날라카 수타 Nalaka Sutta〉에 붙어 있는 서사시와 〈카타밧투(論事) Kathvatthu〉에서 붓다의 출생지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 출생에 대한 최초의 경전적 설명은 산스크리트 경전인 〈대사(大事) Mahavastu〉와 〈랄리타비스타라 Lalitavistara〉 제7장에 나오는데, 둘 다 3세기 또는 4세기 이후에 편찬되었다.
그러나 서기전 약 273~232년 경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왕이었던 아소카가 붓다의 출생지라고 생각하고 이 지역을 방문한 사실이 기록된 비명이 발견됨으로써 이 전설은 늦어도 서기전 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 지역은 유명한 불교 순례지이다.
Ksatriya
답글삭제(영)Kshatriya/Kshattriya/Ksatriya.
힌두교의 4개 바르나(varna) 가운데 제2계급.
전통적으로 무사·귀족을 포함한 지배층이었다. 가장 오래된 베다에는 크샤트리아(권력을 뜻하는 '크샤트라'의 소유자)가 첫 서열에 꼽히며, 그 다음 브라만(사제·법학자)·바이샤(상인)·수드라(장인·노동자) 등이 차례로 열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지위가 변하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았다. 당대의 지배자를 위해 큰 공적을 세우면 그 대가로 크샤트리아의 신분에까지 오를 수도 있었다. 비슈누 신의 6번째 환생인 파라슈라마에 의해 폭정을 일삼던 크샤트리아가 멸망하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것은 일부 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이어져오던 브라만과 크샤트리아의 권력 싸움이 브라만의 승리로 끝났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여겨지고 있다. 베다 시대 말기에 이르면 브라만이 최고 계급이 되고 크샤트리아는 그 다음 자리로 밀려났다. 현재 크샤트리아는 귀족집단인 라지푸트를 정점으로 하는 다양한 지위의 카스트 집단들을 포괄하고 있다.
Vesak
답글삭제(산)Vaisakha (팔)Vesakha.
석가모니의 탄생, 깨달음, 그리고 죽음을 기리는 상좌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음력으로 베사카(Veskha)월(양력으로는 4월이나 5월에 해당)의 보름날에 거행된다. 남방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이날 석가모니가 태어났고, 깨달음에 이르렀으며, 죽었다고 한다. 특히 미얀마에서는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한 것도 이 날이었다고 한다. 이 날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국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특별한 종교행사를 거행하고, 석가모니의 자비를 되새기면서 잡았던 새나 물고기를 풀어주고 스님들에게 음식이나 그 밖의 것들을 보시(布施)하는 등 다양한 선행(善行)을 하는데, 그러한 사람은 나중에 복을 받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