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0일 수요일

(3) 금강경의 가르침을 통해본 싯다르타


 (3) 금강경의 가르침을 통해본 싯다르타

〈금강경〉의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인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라는 말씀을 따라 본 글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하나의 인간인 ‘싯다르타’로 뵙고자 한다. 금강경에서는 있는 바의 형상조차 부정할진데, 현실적인 역사적 사료와 경전에 언급된 여러 사실들에서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뚝 떨어져 일곱 발자국을 걸으시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는 등의 허망한 신화적인 상(相)을 모두 벗겨낸 참다운 여래(如來)를 뵙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에도 찾아야할 의미가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이 글에서는 전설화된 석가모니의 생애를 가능한 한 역사상의 실재인물로 접근하고, 그가 거의 신적으로 초인화된 인물로 신앙을 받게 되기까지의 배경과 경과를 최대한 사실의 측면에서 살펴보기를 시도해 본다.

‘싯다르타’라는 인물은 분명 고대의 인도에 살았던 한 인간이다. 그는 항상 바로 옆의 큰 나라인 코살라국의 위협과 침략에 시달리는 조그마한 나라의 허울만 좋은 왕자로 태어났다. 유아기에는 태어나서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젖도 나지 않는 이모에게 양육된 불쌍하고 외로운 아기였다. 그리고 이복형제와 사촌들과 함께 그리고 모를 성장했던 소년기는 지나치다할 정도로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지극히 내성적인 여린 소년이었다고도 전해지며, 청년기에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싯다르타의 헤아림으로는 곧 다가올, 너무도 자애롭기 그지없는 -따라서 큰 아들로서, 왕자로서의 책무를 은근히 오히려 강요하는 듯 여겨졌을 법도 할 만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힘없는 자신의 왕국에 닥쳐올 ‘멸망’이라는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에 항상 우울하였던 불행한 젊은이였다. 그 깊어가는 우울은 인생의 또 다른 말이라 할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한 염증으로 까지 치닫게 만들어 결국은 삶 자체를 혐오하도록 내 몰았을 것이다.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에 출가할 때까지 함께했던 ‘야쇼다라’를 비롯한 모두 세 명의 부인들과의 금슬 또한, 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깊은 우울과 함께 언뜻언뜻 그에게 있어선 마지막 도피처였을 출가(出家)에 대한 갈망과 수행(修行)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나는 조증(躁症)의 기운으로 결코 원만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출가 이후 경전 등에 묘사되는 6년 혹은 7년 동안의 고행의 모습은 사실 ‘깨달음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극단적인 행동으로서 결국은 계속적으로 격심해져 가는 ‘우울증’ 나아가 ‘조울증’의 전형으로 다른 모습을 덮어 썼을 뿐인 ‘자기 자신에 대한 가학폭력 내지는 자살시도’로도 볼 여지는 다분하다.

요컨대, 모든 상(相)을 벗겨내고 본 싯다르타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어릴 적부터 시작된 우울증이 청년기에 들어서는 계속적으로 깊어가는 조울증으로 까지 발전하여 시달린 끝에 그 것에 대한 도피로서 출가를 선택하였으며, 수행의 모습은 결국 죽음을 바라는 자의 그것처럼 무모하다할 정도의 극단의 것으로 까지 치달았던 것이었다.

석가모니의 참된 수행과 깨달음은 수자타(Sujata)에게 유미죽을 공양 받은 시점부터 비로소 획기적인 전기로서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나이 35살(혹은 36살)에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것을 다 이겨내고 이른바 ‘정각(正覺)’을 얻어 우리가 숭상해 마지않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파격적인 내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내가 본 우리와 같은 색신(色身)을 보유하셨던 이른바 역사적 붓다(historical Buddha)로서의 싯다르타의 진실은 이러하고, 차라리 그러기에 그의 위대성은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하 자세히 논한다.

댓글 2개:

  1. 난다가 석가모니의 성도(成道)시에 태어났다는 전승도 있으나, 분명〈수행본기경〉에는 구이부인과 결혼할 당시 겨루는 경쟁자의 하나로 난다가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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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또한, 난다는 이복형제임이 확실하고, 보통 사촌으로 표현된 데바닷타와 아난다 또한 이복형제일 가능성도 있다. 초기 경전 등에 싯다르타의 숙부에 대한 정확한 언급을 찾기가 힘들고 그들이 사촌이라는 언급 또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이모에 대한 언급도 없어 양모이기도한 이모 마하프라자파티의 후생일 것으로 이종사촌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모두 같은 고타마 씨족이라는 점에서 정반왕이 다른 형제가 없다면 결국 정반왕의 소생이다. 최초의 비구니인 양어머니이자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의 출가에 아난다의 조력이 컸던 사실도 그런 의심을 짙게 한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난다와 데바닷타 그리고 아난다와 천안제일로 알려진 아나율까지도 싯다르타와 아버지가 같은 이복형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일단은 전승을 존중하여 난다만을 이복형제로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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